광주시 서구 광천동 광암교 아래 하천부지. 이곳에서는 수천개의 해바라기 모종이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광천동 주민 이병용(78)씨는 20여일에 걸쳐 틔운 새싹에 물을 주며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다. 그의 가슴께에는 임철진 광천동장에게 받은 ‘해바라기 반장’ 명찰이 달려 있다. 20여년 동안 동네 곳곳에 꽃을 심어온 그는 ‘해바라기 반장’을 최고의 영예로 여긴다.
“곡괭이로 고랑을 파고, 씨앗을 물에 적당히 불려 깊이 있게 심어야 한다. 물·거름도 잘 조절해야 한다”는 이씨의 말에서는 전문성이 묻어났다. 그는 ‘해바라기 이모작’을 활용해 6월과 9월 두 차례 꽃이 피게 했다. 해바라기밭 곳곳에 직접 제작한 말뚝을 꽂고, 비닐을 씌우고 보살핀다.
"추운 날씨에 서리를 맞으면 새싹이 다 죽어요. 비닐을 씌워 줘야 얼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지요. 비닐은 동에서 받아오거나, 고물상에서 얻어온 폐비닐을 재활용하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1000여평에 달하는 하천부지에 해바라기를 심어 광주천을 ‘꽃밭’으로 만들었다. 이 때 해바라기에서 좋은 씨를 받아 보관해 둔 이씨는 올해 광주천뿐 아니라 서구청 앞 7000여평의 부지에도 해바라기를 심을 계획이다.
“해바라기를 심는 이유는, 단연 예뻐서지요. 큰 것, 작은 것, 중간 것이 어울려 피어 있으면 참 기분이 좋아요. 코스모스나 유채꽃 등 다른 꽃도 함께 심고 있어요. 꽃으로 우리 고장 하천을 청계천보다 아름답게 꾸미는 게 꿈입니다.”
이씨는 젊은 시절부터 원예 활동과 관련이 깊었다. 해병대 훈련병이었던 1964년 막사 옆, 철조망 근처 등에 호박을 심었고, 해마다 1만5000개를 수확해 장병들을 배불리 먹였다. 20대 시절에 농촌진흥원 원예과에서 수업을 받은 뒤 각종 농촌 경연대회에서 신품종을 개발해 입상하기도 했다.
이씨는 2001년 광천동에 이·미용원을 열고 옥상에서 평소 좋아하던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구청 주도로 빈집 터나 골목 등에 화단을 만드는 사업이 시작되자, 이씨가 광천동을 꾸미는 데 선두에 섰다. 덕분에 이씨 주변은 집 근처 골목부터 광주천 대로변, 이웃집 대문까지 꽃이 가득하다.
“동네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시작했죠. 가물 때 물도 줘야 하고, 잡초도 뽑아줘야 해 힘든 일이지만, 자치위원이나 부녀회 등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니 즐거웠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해바라기 싹을 보러 나가는 이씨는 동네 이웃들에게도 유명인사다. 만나는 이웃마다 “일 좀 그만하라”며 걱정 어린 핀잔을 듣지만, 집 옥상에 발 디딜 틈 없이 쌓아 둔 해바라기 모종들이 광주천에 뿌리를 내릴 날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앞으로도 하천 꽃 가꾸기를 계속해 시민들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러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삭막한 도심 속에 넓은 물도 흐르고, 바람도 통하는 이 휴식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고 싶어요.”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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