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는 뭘까? 왜 우리 나라사람들은 식당 종업원에게 ‘이모’라 부를까?"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무릎을 치는 순간이 있다. 특히 음식과 관련된 내용은 더더욱 그렇다.
‘수요시식회’, ‘알쓸신잡’ 등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과 친숙한 황교익은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육개장이 지닌 ‘포용력’, 다시 말해 소고기의 감칠맛, 고춧가루의 칼칼함, 대파와 마늘의 달짝지근한 맛 등이 어우러진 맛을 한국인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식 전문 작가인 황교익이 펴낸 ‘수다쟁이 미식가를 위한 한국음식 안내서’는 음식들의 유래와 발자취를 담았다. 우리 땅, 우리 바다 먹거리에 담긴 우리의 삶을 저자는 구수한 입담과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다.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미역국이다. 지구촌에는 저마다 생일을 기념하는 음식이 있다. 우리나라 생일 음식인 미역국에도 다양한 의미가 투영돼 있다. 과학적인 접근, 일테면 산모의 건강, 영양학적 가치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혹독한 겨울을 넘겨 미역이 탄생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옛사람의 생각에는 미역과 인간의 탄생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성과 고통의 유사성을 든다.
‘밴댕이소갈딱지’라는 말이 있을 만큼 친숙한 ‘밴댕이’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자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밴댕이젓 한 독을 분배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것이 ‘승정원일기’에 기록돼 있다고 한다. 원문에 ‘蘇魚’, 즉 ‘소어’가 등장하는데 한국고전종합DB에서 밴댕이라고 번역했다고 제시한다.
밴댕이는 그물에 걸려 배 위에 오르자마자 죽을 만큼 성질이 급하다. 어부들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고, 여기에서 ‘밴댕이소갈딱지’라는 말이 유래했다.
삭힌 홍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홍어의 주산지는 황해였다. 그러나 홍어를 강하게 숙성해서 먹진 않았다. 전라도에서 특별히 삭힌 홍어를 많이 먹게 된 것은 날씨 때문이었다. 겨울에도 홍어를 바깥에 두면 적당히 삭혀지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호사가들은 남도음식의 특징으로 발효음식을 꼽았다. 개중에 푹 삭힌 홍어는 독보적으로 돋보였다. 한국음식을 알려면 남도음식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에는 푹 삭힌 홍어 맛을 알아야 하는 듯이 떠들었다. 삼합이라는 말도 이때에 만들어졌다.”
‘식당에 ‘이모’가 사는 까닭’에 대해서도 저자는 나름의 추론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른다. 1960년대 산업화가 되면서 도시로 떠난 농민은 노동자가 됐다. 얼마 전까지 농민이었던 이가 밥을 사먹으려니 어색하고, 마찬가지로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도 원래는 농민이었던 탓에 서로 돈을 받고 밥을 파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정사와 만담을 버무려 흥미롭고도 풍성하다. 익숙했던 음식에 이토록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시공사·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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