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새로운 출발 <2>
인생은 롤러콜스터와 같다고들 한다. 급전직하, 급전상승하는 롤러코스터가 인생을 닮았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해서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인 걸 보면 수긍이 간다.
곡성 출신 윤미경 동화작가. ‘무지개작가’라고도 불리는 그의 삶 또한 극과 극을 오갔다. 그는 동화작가가 되기 전 안경사로 6년을 근무했다.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시간”이면서도 한편으로 “그 시간이 인생에 있어 고마운 씨앗”이기도 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광주 서구 광천동에 자리한 신일작은도서관을 찾았다. 윤 작가는 이곳 상주작가로 입주해 작품 창작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주위를 환하게 물들이는 밝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천상 동화작가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경사로 근무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의미를 몰랐습니다. 재미도 없었고 보람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러나 후일 MBC 장편 대상을 수상한 ‘시간거북이의 어제안경’은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겁니다.”
원래 그의 꿈은 화가였다. 그의 말대로 “뜻하지 않게 안경사가 됐지만 꿈은 줄곧 화가”였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안경사로 근무를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안경사로 일을 하면서다.
“그 시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어찌나 많은 책을 읽었던지 헷갈리기 시작해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는데, 400여 편에 이르더라구요. 어느 때는 읽었던 책을 통째로 필사를 하기도 했죠. 그 외에 7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때의 습작과 독서가 지금의 바탕이 됐다. 동화작가로 등단하기 전 수채화가로 활동했다. 10년 동안 학교에서 미술 강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미술강사가 되기 위해 무려 28개 자격증을 땄다”며 “아동미술지도사, 종이접기, 북아트, 초크아트 등이 그때 취득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동화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우연한 기회에 동화책 일러스트를 보고, 동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소문 끝에 이성자 동화작가가 운영하는 문예창작소를 알게 됐고 그 길로 찾아갔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글을 써보면 나중에 더 깊이 있는 작품을 쓰지 않겠느냐’는 선생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난생 처음 동화를 썼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쓴 작품이 황금펜문학상을 수상한 ‘고슴도치, 가시를 말다’. 뒤이어 지역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고, 2015년에는 ‘달려라 불량감자’로 푸른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2019년에는 장편 ‘시간거북의 어제안경’이 MBC 창작동화대상에서 대상을 받게 된다. 만면에 웃음을 띈 얼굴로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에게 어떤 뚝심이 있는 걸까. 좀더 그의 창작비법이랄까, 이면의 모습을 듣고 싶어졌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들이면 도가 튼다”는 말을 믿습니다. 하루 한 장씩 100일 간 얼굴을 그리거나, 15년 동안 목요일이면 시간을 정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요. 비로소 2015년에 광주시 미술대전에서 추천작가가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는 동화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동화작가가 되기 위해 “수백 권의 그림책을 읽고 그렸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만만찮은 내공이 느껴지는 이면에는 그러나, 다른 어두운 면도 내재돼 있었다.
작가가 되기 오래 전, 오롯이 혼자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지난 2016년 전업작가를 하기로 선언했다. “1년 동안 고작 3만원”을 벌었고, 기타 참기름 등 부식재료를 얻었다.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글자와 부호 하나하나는 곧 돈으로 환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혈을 들여서 작품을 쓰리라 각오를 다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노력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지역뿐 아니라 전국의 도서관 등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닉네임 ‘무지개작가’는 무지개파마머리와 멜빵바지, 줄무늬 티셔츠를 입으면서 붙여졌다.
“무지개가발은 원래는 제 그림책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입니다. 또한 이 가발은 저의 아빠가 원래 주인이었죠.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셨던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고 불우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썼어요. 제가 눈여겨봤다가 ‘강탈하다시피’ 뺏어왔어요(웃음)”
올해도 많이 바쁠 것 같다. 출간 계약을 끝낸 책이 “12권이나 된다”는 말이 돌아온다. 이편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읽었는지 “그림책 3권과 동화책 9권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인다.
“글을 쓸 때 중요한 것은 ‘즐기라’는 것입니다. 창작의 고통은 무엇에 비할 수 없지만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요. 또한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도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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