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았던 시간에
김소연 지음
책 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세심히 읽는 편인데, 아주 짧은 글이지만 작가에 대한, 책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마음사전’, ‘한 글자 사전’ 등을 쓴 김소연 시인의 지난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에는 “확신에 찬 사람들 속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약한 마음과 소소한 노력이 언젠가는 해질 녘 그림자처럼 커다래질 수 있다는 걸 믿고 있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에 대한 애정이 곧 나에 대한 애정임을 입증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쓰여 있다.
신간 ‘그 좋았던 시간에’의 책 날개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의외의 일들을 선호한다. 구경하는 것보다 뛰어드는 것을, 공부하는 것보다 경험해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고 나서 후회를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실내에 있는 것보다 야외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 좋았던 시간에’는 그녀의 첫 번째 여행산문집이다. 코로나 19로 외국 여행의 길은 완전히 막히고, 국내 여행도 왠지 조심스러운 요즘 작가에게 여행은 ‘우주를 독식하는 시간’이자 ‘도처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시간’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으며 감동도 받고 후회도 하면서 길어올린 사색과 마음에 담은 풍경들을 한 데 담았다.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세상 밖으로 떠난 다채로운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2부는 여행지에서 쓴 일기 모음이며 3부는 여행하며 느낀 사색의 편린들이다.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은 세계 이곳 저곳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밀림 말레이시아 타만 네가라에서의 한 없이 느린 삶, 일본 홋카이도에서 풀잎 바람개비를 선물로 주던 늙은 부부, 네팔 촘롱에서 만난 어린아이, 인도네시아에서 돌고래와 조우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또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터키 이스탄불, 페루 마추픽추 등의 추억을 들려주며 포루트갈 포르투에서는 여행을 멈추고 방을 얻어 많이 자고 많이 먹으면서 많이 쉬는 것이 더 좋은 여행일 수 있음을 마음에 담는다.
또 충남 태안 서쪽 바닷가 마을에 한달간 머물렀을 때는 수산물 직판장 사람들에게서 해물전, 찐감자를 건네 받으며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결속력 없이도 행할 수 있는 다정한 관계, 목적 없이도 걸음을 옮기는 산책, 아무 생각도 않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식물처럼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시인 정지용이 했다는 ‘여행은 이가락(離家樂)’, 그러니까 ‘집 떠나는 즐거움’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근사한 여행지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그저 집을 떠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 말을 마음에 담고 ‘낯선 내가 되는 시간’을 갖는다. 침묵하고 있는 심장 대신, 들떠 있는 심장이 되는 시간, ‘느린 사람들이 느리게 살아가는 곳’으로 그녀는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시인의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들은 한참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달·1만45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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