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운암동 벽산블루밍 2단지 앞 사고 현장 ‘참혹’
횡단보도 건너던 엄마·자녀 8.5t 덤프에 치여 4명 사상
“과속 빈번한 위험한 도로”…교통사고 올해만 10여건
“신호등 설치” 주민 요구 외면한 경찰, 사고 후 “설치 추진”
유치원에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엄마와 세 자녀가 화물차에 치여 세살 짜리 아이가 현장에서 숨졌다.
불과 6개월 전 비슷한 사고가 났던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교통사고 위험을 우려해 횡단보도 앞 신호등 설치를 요청했던 주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 건너다 참변=17일 광주북부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40분께 광주시 북구 운암동 벽산블루밍 아파트 앞 왕복 4차로 도로에서 8.5t 화물차가 횡단보도에 서 있던 A(여·35)씨와 유모차에 타고 있던 영아, 자녀 B(2)양, 엄마를 따라가던 C(7)양을 치었다.
이 사고로 B양이 숨지고 A씨와 C양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유모차에 둘째 누나(B양)와 함께 타고 있던 막내아들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 가족은 이날 길 건너 어린이집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앞에 설치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참변을 당했다.
당시 도로는 출근길 정체가 빚어지면서 아파트 앞 교차로뿐만 아니라 횡단보도 위까지 꼬리를 물며 멈춰선 차량들로 줄을 이었다. A씨 가족은 정차된 차량을 피해 횡단보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정체가 풀리면서 진행하는 화물차에 사고를 당했다.
화물차 운전자는 “A씨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화물차 운전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호등만 설치해줬다면=사고 지점은 광주시 북구 운암동 선일유치원 주변 도로로, 지난 2017년 5월 8일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경찰과 행정당국이 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했음에도 횡단보도와 과속방지턱, 과속단속카메라 등이 없어 지난 5월 7살짜리 남자아이가 차량에 치어 중상을 입는 등 일대 도로에서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잇따랐다. 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민은 “인명사고뿐만 아니라 접촉사고까지 더하면 올해에만 10건이 넘는 사고가 발생한 곳”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광주시 등은 주민들의 요청을 반영, 현장조사를 거쳐 ▲도로노면 표시 ▲과속방지턱 ▲언덕식 횡단보도 ▲무단횡단 방지 펜스 등을 설치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요청했던 신호등은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결정했었다.
주민들은 그동안 과속 차량들이 많은 점 등을 들어 신호등이 횡단보도 앞에 설치돼야 출·퇴근길 정체에도 차량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서고, 교차로까지 꼬리를 무는 행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신호등 설치로 인한 주민 불편 유발 ▲통행량이 적어 과속 방지를 위한 언덕식 횡단보도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사고 당일, 점심시간대인 낮 12시 4분부터 10분간 해당 도로를 통과한 차량만 100대가 넘을 정도로 통행량이 많았다.
도로교통법상 하루 8시간 기준시 횡단보도를 지나는 차량이 시간 당 600대 이상, 보행자는 180명 이상이면 신호등을 설치할 수 있다.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긴 했지만 과속 단속카메라도 없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언덕식 횡단보도를 올라타거나 속도를 살짝 줄이는 듯 시늉만 낸 차량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경찰이 올해 광주시와 공동으로 ‘민식이법’ 개정에 따른 과속카메라(99대), 횡단보도 신호기(87대)를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하는 정책에도 해당 구역은 빠져 있었다. 초등학교 앞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의 치밀하지 못한 교통 행정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는 대목이다.
비숫한 구간(길이 160m·왕복 4차로)인 광주시 서구 운천초 일대 어린이보호구역의 경우 과속방지턱은 물론 언덕식횡단보도에다 신호등, 과속신호위반단속 카메라 등도 설치돼있었다. 경찰은 사고가 나자 뒤늦게 해당 도로에 신호등을 설치키로 했다.
광주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6월 다각적인 검토 끝에 신호등 미설치로 결론을 냈지만, 이날 사고가 발생한 만큼 신호등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석·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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