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하게 법망 피한 전세사기 처벌 가능해졌다

법원 “부동산 취득하고도 임차인에 보증금 반환 능력 미고지는 기망 행위”
무자본 갭투자 사기범 징역 4년6월 선고…임대차보호법 개정에도 영향

/클립아트코리아

부동산 무자본 갭투자 과정에서 건물을 사들였음에도 임차인과 임대차계약 등 법률적 계약관계가 없어 법망을 피해오던 사기범의 처벌이 가능해졌다.

검찰이 부동산을 취득하고도 임차인에게 중요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부작위(의무가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에 의한 기망행위’라는 법리를 제시해 법원이 인용했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의 판단이 최종심까지 유지되면 앞으로 임대인은 자신의 보증금 반환 능력과 부동산 매매 사항 등을 임차인에게 알려야 한다.

신용불량자인 A(54)씨는 운영하던 사업체의 경영난으로 세금 6000만~7000만원이 체납되자 일명 ‘무자본 갭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무자본 갭투자는 부동산 전세금이 오르는 반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매매가보다 임대보증금이 비싼 역전현상을 틈타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임대차 계약을 하면서 받은 보증금으로 주택을 매매하는 투자방식이다. 결국, 자본금 없이 부동산을 매매했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전세사기가 성립한다. 소위 ‘깡통 전세’다.

A씨는 지난 2022년부터 전형적인 무자본 갭투자로 부동산을 매매해 왔다.

A씨가 2022년 7월 27일 임차인에게 1년 6개월간 전세보증금 7700만원을 받아 기존 건물주에게 6500만원을 주고 나주혁신도시의 한 오피스텔 소유권을 넘겨 받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A씨는 기존 임대차 계약이 맺어진 건물을 매수하기도 했다.

임대차 기간이 종료되면 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기존 임대차의 계약관계를 그대로 승계하고 부동산을 매수한 것이다.

문제는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도 실정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A씨가 법률적으로 임대차 계약 당사자가 아니고 피해자인 임차인들에게 사기범행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발생해도 임차인의 임대차계약 승계 전세사기 유형은 그동안 형법상 기소하기 어려웠고, 재판에 넘겨져도 번번이 무죄가 선고됐다. 건물 원소유자도 채무를 정상적으로 양도했기 때문에 법률적 책임이 없다.

A씨도 광주지검이 사기죄로 기소하자 재판에서 이같은 주장을 펼쳤다.

광주지검 공판부(부장검사 윤나라)는 A씨의 행위가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 및 처분행위’로 인한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법리의 핵심은 기존 임대차계약을 승계하고 주택을 사들였다면 임차인에게 고지의무가 발생하고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대차계약 종료시 보증금 반환 능력 여부가 계약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어서 이를 알려야 한다.

A씨의 경우 중요 사항을 알리지 않아 임차인이 A씨의 임대인 지위 승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A씨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과정에서 임차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처분행위도 있다고 봤다.

광주지법 형사5단독(부장판사 지혜선)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기죄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채무초과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자본 갭투자가 가능한 부동산을 물색해 69채의 주택을 취득했다”면서 “부동산 매매 계약마다 수백만~수천만원의 현금을 취득했음에도 위험은 임차인에게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갭투자를 하면서 임차인들에게 연락한 경우가 거의 없고 보증금 반환시기나 방법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보증금 반환을 구하는 임차인의 연락을 회피하며 연락을 두절했다”면서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가하려는 확정적 고의는 없었다 하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고, 피해자들의 전 재산이자 삶의 터전을 범행도구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현행법상 부동산 임대차 관계에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자신의 채무 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고지할 의무가 없다. 부동산 매수인 기존 임대차계약을 승계하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위험 발생 가능성이 처음부터 매우 높은 상황에서 임대차 계약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 반환할 실질적인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고지했어야 할 신의칙상 의무가 있다는 판단이 유지되면 실정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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