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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예향

[굿모닝 예향 창간 40주년, 남도투어] 눈 내리는 남도, 여기가 설국

by 광주일보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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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메타세쿼이아랜드·죽녹원
뽀드득 뽀드득 눈 쌓인 대숲길
앙상한 가지에 덮인 흰 눈 환상
신안 천사섬 분재정원
4000만 송이 빠알간 애기동백에
내려 앉은 하얀 눈 천사 찾아온 듯
순천 낙안읍성

눈쌓인 편백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장성 축령산. 하얀 솜으로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는 이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흰 눈이 내리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마음만큼은 어려서인지 눈이 내리는 날이면 강아지처럼 밖으로 나가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이다. 올 겨울 눈이 내리면 어느 곳으로 달려가 볼까. 함박눈이 내리면 동화같은 세상이 펼쳐지는 전남의 설경 명소를 소개한다.

◇낭만 겨울 데이트코스 담양 메타세쿼이아랜드·죽녹원

새하얀 눈이 내리는 날엔 낭만적인 겨울 데이트코스로 알려진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향한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풍경이 있기에 발길을 서두르곤 한다.

담양읍 학동리에 위치한 메타세쿼이아길은 메타세쿼이아랜드내에 있는 담양 제일의 관광명소다. 당초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였으나 국도 바로 옆에 새로운 국도가 뚫리면서 산책길로 조성됐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별로 다양한 옷을 갈아입는데 그 중의 최고는 단연 ‘겨울’이다. 가을에 입었던 붉은 옷을 모두 벗고 앙상해진 가지에 새하얀 흰 눈이 덮이면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는 환상과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수십장의 사진을 찍어도 아쉬움이 남는 아름다움이다.

가로수길이 위치한 메타세쿼이아랜드에는 유럽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꾸며진 메타프로방스, 다양한 공룡 조형물과 풍차를 만날 수 있는 어린이 프로방스, 자연 생태보호와 생태계가 전시된 에코 허브센터, 국내 유일의 개구리 테마 생태공원 등이 모여 있어 온종일 둘러봐도 지루하지 않다.

 

눈 쌓인 죽녹원 대숲길을 걷는 시간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담양의 랜드마크인 죽녹원의 겨울도 빼놓을 수 없다. ‘뽀드득! 뽀드득!’ 눈 쌓인 대숲길을 걸을 때면 유독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세계로 들어온 듯 나 홀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눈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 굽다던고 /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 아마도 세한고절(歲寒高節)은 대뿐인가 하노라’ 고려말 충신이었던 원천석(1330~?)이 조선 왕조가 개국하자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대나무와 같은 자신의 절개를 노래한 시조다.

원천석의 시조처럼 수북이 쌓인 눈에도 대나무는 휘어질지언정 결코 굽히지 않고 푸른 잎을 보여준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는 대나무의 설경을 보며 한해를 이겨내는 힘을 받아가길 기원한다.

◇눈꽃과 빠알간 동백꽃, 신안 천사섬 분재정원

빠알간 동백꽃에 새하얀 눈이 내려 앉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늘에서 천사가 찾아온 듯 경건한 마음이 든다. 붉은 동백꽃과 하얀 눈꽃이 조화를 이뤄 신비롭기까지 하다.

4000만 송이 애기동백이 피어나는 신안군 압해면 천사섬 분재정원으로 향한다. 다도해 바다 정원에 3㎞에 이르는 애기동백나무 2만 그루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산다화(山茶花)라고도 하는 애기동백은 동백꽃과 비슷하지만 잎과 꽃이 작아서 애기동백(아기동백)이라 불린다. 꽃이 개화하기 시작하는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4000만 송이의 애기동백꽃이 붉은 미소를 선물한다.

매년 이 무렵이면 ‘섬 겨울꽃 축제’가 개최된다. 애기동백 길을 걸으며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고 애기동백 꽃벽과 애기동백 아치 포토존에서 인생샷을 남겨보기도 한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엔 인공눈을 뿌려 방문객들의 서운함을 달래준다.

천사섬 분재정원에는 애기동백뿐 아니라 둘러볼 곳이 많다. 분재원과 조각공원, 야생화원, 미술관이 함께 있으며 무엇보다 2000년이 넘은 주목 분재와 소나무 분재까지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수백종의 분재를 만날 수 있다. 겨울철(11~2월) 분재정원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입장은 폐장시간 1시간 전까지 가능하다.

◇초가마을에 눈 내리는 풍경, 순천 낙안읍성

눈 쌓인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초가마을에 하얀 눈이 내리면 그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어 날이 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고요함과 적막 속에서 느끼는 여유로움은 값비싼 금은보화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낙안읍성’은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일대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1397년(태조 6)에 일본군이 침입하자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처음 토성을 쌓았고 1626년(인조 4)에 임경업이 낙안군수로 부임했을 때 지금의 석성으로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1~2m 크기의 커다란 자연석을 이용해 총 길이 1420m, 높이 4m로 견고하기 쌓아진 석성은 동내, 서내, 남내 3개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옛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으며 100세대에 가까운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초가마을에 새하얀 눈이 쌓이고 밥 짓는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눈길을 뚫고 찾아간 여행길이 결코 아깝지 않을 풍경이다.

서문과 남문 중간지점인 읍성 전망대에서 마을을 한눈에 바라보는 것도, 동문 위 낙풍루로 올라 성곽을 따라 걸으며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조망하는 것도 추천한다. 11~1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 2~4월은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설경에 홀려 어느새 ‘눈멍’, 장성 축령산

눈이 내리는 날 산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눈꽃이 핀 설경을 만끽하고, 잠시 쉬며 하는 ‘눈멍(눈 보며 멍 때리기)’은 겨울에만 가능한 색다른 경험이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가장 먼저 밟는 기분은 낭만 이상의 짜릿함을 얻는다.

눈 산행에 많은 추천을 받는 곳 중 하나가 ‘편백나무 치유의 숲’ 장성 축령산이다. 서삼면과 북일면에 걸쳐있는 축령산은 울창한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하다. 편백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기 위해 봄, 여름, 가을철 찾아오는 이들이 많지만 겨울 설산의 풍경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눈쌓인 편백나무가 끝없이 펼쳐진다. 하얀 솜으로 꾸며놓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는 이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손발은 차갑고 시릴지라도 마음만큼은 처음 경험해보는 청량감으로 뻥 뚫리는 듯 하다.

축령산은 서삼면 추암리 괴정마을과 북일면 문암리 금산마을을 기점으로 3개의 등산코스가 마련돼 있다. 어느 곳으로 올라도 1시간 30분 이내의 높지 않은 등산로이지만 좀 더 여유를 갖고 오르는 게 좋다. 겨울 산행을 할 때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체온 유지를 위한 방한용품을 갖추는 건 기본, 아이젠과 등산 스틱도 준비하는 게 좋다.

 

화순 만연사의 설경. 처마 끝 고드름 사이로 바라보이는 대웅전과 눈 덮인 배롱나무.

◇세상 시름 말끔히 씻기는 듯, 화순 만연사

화순 만연사는 눈이 내리는 날 사진가들이 찾는 단골 장소다. 눈 내리는 소식이 들려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만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1208년(고려 희종 4년) 만연선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만연사 설경의 백미는 대웅전 앞 배롱나무다. 여름에는 진분홍 백일홍 꽃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꽃이 진 배롱나무는 초록 옷을 입었다가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데 사계절 내내 달려있는 연등 덕분에 쓸쓸해 보이지 않고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온을 얻어가곤 한다.

대웅전과 화우천, 장독대, 담장에까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이면 배롱나무에 걸린 붉은 연등은 유독 붉어 보인다. 멀리서 보면 흰 눈에 내려앉은 홍시 같기도 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순간의 모습도 장관이다. 사진가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만연사를 찾곤 한다. 한참을 서서 배롱나무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시름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 하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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