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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재기자

“올해 아버지 기일은 우리 가족에 73년만의 광복”

by 광주일보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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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양민학살사건 73주기 추모식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대상 가족들
“73년 한·누명 벗어나길…” 호소
군경 총살에 살아남은 안종필씨
“연좌제 두려워 피해 숨기며 살아”

30일 함평군 월야면 함평사건희생자 추모공원에서 유족들이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있다.

“올해 아버지 기일(忌日)은 우리 가족에게 73년만의 광복이나 다름없어요.”

함평양민학살 희생자 유족 박모(73)씨는 30일 함평군 월야면 함평사건희생자 추모공원 내 희생자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1951년 아버지가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이래 73년이 지나도록 진실 규명은커녕 피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18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박씨 아버지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희생자로 인정하자, 박씨는 용기를 내 처음으로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날 함평사건희생자 추모공원에서는 (사)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 주최로 73주기 함평양민집단학살희생자 합동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들을 추모했다.

박씨는 추모식에 참석한 유족들이 고통스러운 73년을 보냈을 것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와 가족이 이유 없이 ‘빨갱이 부역자’, ‘반동분자’ 등 멍에를 지고 희생당했음에도 다른 사람과 감히 아픔을 나누지도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왔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박씨의 아버지 고(故) 박평재(당시 24)씨는 1950년 11월 함평군 신광면에서 한국 경찰의 총탄에 희생됐다. 박씨가 태어난 지 3개월일 때였다.

박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일본 유학파로 1945년께 귀국한 뒤 고향인 함평군 대동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마을 이장을 지냈다.

5년 뒤 한국전쟁이 터지자 밤마다 평재씨는 빨치산의 식량 제공 및 협조 요구에 시달렸고, 결국 외갓집이 있는 함평군 손불면으로 피신하려다 중간 지점인 신광면에서 이유없이 경찰의 총에 맞아 희생됐다.

이후 함평군 일대에서는 평재씨를 쏜 경찰이자 가해자가 사실은 친구였고, 그가 이유 없이 친구를 숨지게한 과오를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박씨는 연좌제가 두려워 아버지에 대해 한마디도 못 꺼낸 채 숨죽여 살아왔다. ‘군경이 일으킨 사건에 가족이 연관돼 있으면 안된다’는 이유로 공직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박씨는 “남편을 잃고 홀로 세살 터울 누나와 저를 키우고, 대학도 보내고 해외 유학도 보내준 어머니가 너무 안타깝다”며 “아버지 명예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가셨으면 좋을텐데 2002년에 너무 일찍 눈을 감으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모식에 참석한 다른 유족들도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김정숙(여·74)씨도 지난 8월 아버지 김영완(당시 23)씨가 군경에게 피살당한 사실에 대해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을 받아 유족으로 인정받았다.

김씨는 아버지가 1951년 함평 손불면 동암리에서 농사를 짓던 도중 난데없이 군경에게 끌려갔다고 설명했다. 군경은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이유를 들어 김씨의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영완씨 등 세 명을 구금했으며 그 중 영완씨를 살해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도 우리 가족은 어디에 함부로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었다”며 “진실규명이 빠르게 이뤄지고 배·보상 판결까지 이뤄져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군경의 무차별 학살 현장에서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안종필(75)씨다.

안씨는 세 살이었던 1951년 1월, 함평군 월야면에서 어머니 강영주(당시 25)씨의 등에 업힌 채 군경으로부터 “마을 사람들 다 나와라”는 말을 들었다. 군경은 마을 사람들 수십명을 줄세우더니, 돌연 인민군에 가담했다는 등 이유를 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이 사건으로 안씨는 엉덩이에, 어머니 강씨는 팔다리와 복부 등에 총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안씨는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민간요법으로 호박을 짓이겨 환부에 눌러 대며 고통을 참았다.

안씨는 “몸이 불편해 일도 제대로 못 하는 몸이 됐는데도 보상을 커녕 혹시 연좌제로 처벌당할까봐 피해 사실을 남에게 꺼내기조차 어려웠는데, 이제야 73년 한스러운 삶을 돌려받을 길이 생겼다”며 빠른 진실 규명 및 국가의 배·보상을 촉구했다.

진화위는 지난 8월 21일 ‘함평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함평지역 주민 42명과 부상자 1명 등 총 43명을 함평군경사건 희생자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진화위에서 결정한 한국전쟁 전후 함평 지역 희생자는 총 1612명에 달한다. 한편, (사)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는 30일 한국전쟁 전후기 함평지역 생존자 13명의 증언을 담은 증언록 ‘나비의 꿈 함평’을 출간해 추모제 현장에서 배포했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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