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오디세이 美路 - 해남]
명량 울음소리 준엄, 무소유 정신 청아…충무공과 법정스님 만나러 가는 길
국토순례 출발점이자 종착점 ‘땅끝’…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가슴 가득히
2023년 ‘검은 토끼의 해’ 새해가 밝았다. 여행자들은 해남 땅끝을 찾아 새 출발을 다짐한다. 새로 조성된 ‘울돌목 스카이 워크’와 ‘명량 해상 케이블카’는 서남권 관광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차별화된 ‘해양자연사 박물관’과 ‘공룡 박물관’, 흑석산 치유의 숲’에서 해남만의 무늬와 결을 읽는다.
◇새해 새출발을 다짐하는 ‘땅끝’=끝은 역으로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땅끝은 국토 순례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기도 하다. 또한 해맞이와 해넘이 명소로 손꼽힌다. 땅끝항 여객선 터미널앞 맴섬에서 땅끝 탑까지는 950m 거리.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땅끝 전망대까지 왕복하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 끝에 서서/ 길손이여/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섬 자락에 아슬한/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인도까지/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지난 1987년 7월 세워진 ‘땅끝탑’ 하단에는 손광은 시인의 시 2수가 장전(長田) 하남호 선생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탑 앞에는 ‘여기는 땅끝 한반도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가로로 설치돼 있고, 그 앞에 한반도 모형을 물구나무 하듯이 거꾸로 세워놓았다. 탑을 등지고 돌아서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바다뿐이다. 땅끝에서 바다로 돌출된 스카이워크는 뱃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암벽과 출렁이는 파도가 눈에 들어온다.
땅끝탑 한쪽에 ‘땅끝은 남해와 서해의 경계’라는 표지판과 ‘코리아둘레길’의 일부인 ‘서해랑길’(해남1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지도에 땅끝에서 해남반도 서쪽 해안을 따라 송지면사무소까지(거리 14.9㎞·소요시간 5시간)의 노정이 실선으로 표시돼 있다.
땅끝에서 국토순례에 나서는 까닭은 순례자마다 다르겠지만 가슴속 품은 뭔가를 새롭게 벼른다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불덩어리 태양을 가슴에 품듯이, 땅끝에서 열정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절로 가는 마음…‘대흥사’·‘미황사’=대흥사와 미황사는 두륜산(해발 703m)과 달마산(해발 489m)에 피어난 연꽃과 같은 천년고찰이다. 사찰 고유의 무늬와 결을 갖고 있다. 절에 딸린 일지암과 북미륵암, 도솔암 등 암자들 또한 독특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장춘동(長春洞) 십리 숲길을 따라 대흥사를 찾아간다. 하도 숲길이 길다보니 봄날조차 오랫동안 머문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맑은 물소리와 함께 하는 숲길은 호젓하다.
고찰내 어느 곳보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을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까닭은 아마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영향 때문일 것이다. 현재 원교의 ‘대웅보전’ 글씨와 추사의 ‘무량수각’ 글씨가 마주 보고 있다. 두 사람 의 서예 세계는 누가 봐도 확연한 차이가 나는데 유홍준은 이를 ‘추사 김정희’(창비)에서 음식으로 비유해 설명한다.
“‘무량수각’은 기름진 획의 예서풍 글씨이고 ‘대웅보전’은 굳센 획에 리듬이 있는 해서체이다. 서예에 낯선 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무량수각’ 글씨는 중국요리 ‘난자완스’같고, ‘대웅보전’ 글씨는 칼국수 국수발 같다고 하면 모두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대흥사에는 추사와 원교를 비롯해 창암 이삼만(천불전 출입문 ‘가허루’), 정조(표충사 현판) 등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찾아볼 수 있다. 경주산 옥돌로 만든 천불상을 모신 천불전은 멍에 같은 문턱과 꽃무늬 창살 등이 눈길을 끈다.
1.6㎞ 선로의 ‘두륜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두륜산 정상에 손쉽게 올라 빼어난 주변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해남의 하늘길’로 불리는 두륜산 케이블카 운행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다.(문의 061-534-8992)
미황사는 달마산 준봉을 배경으로 다도해를 바로보고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단청빛깔이 희미해져 버린 대웅보전은 화장기 없는 은은한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대웅보전 주춧돌에 새겨진 게와 거북 등 바다생물들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생동감이 넘친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어느 석공의 바다품은 마음을 헤아려 본다.
특히 지난 2017년 11월, 달마산 둘레길인 ‘달마고도’(達摩古道)가 만들어지며 미황사를 찾는 여행자들이 늘었다. 본래 달마산에는 도솔암을 비롯해 12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달마고도’는 달마산을 중심에 두고 옛 암자 폐사지를 연결하는 원점회귀 트레킹 코스로, 4개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총길이 17.7㎞로 종주시 6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된다. 달마산 중턱의 옛길을 최대한 살려 자연적으로 조성한 까닭에 ‘힐링 로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 충무공과 법정스님의 숨결 찾아가는 우수영= “명량(鳴梁) 해협에서 물은 겨울 산속 짐승의 울음소리로 우우 울면서 물러갔다. 물은 물을 밀쳐내면서 뒤채었다. 말 잔등처럼 출렁거리는 물결이 수로의 가운데를 빠르게 뚫고 나가면, 밀려난 물은 흰 거품으로 소용돌이치며 진도 쪽 해안 단애에 부딪혔다.”
김훈 작가는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서 명량(울돌목)의 세찬 물결을 이렇게 묘사한다. 명량은 해남과 진도사이 350여m에 불과한 좁은 해협이다. 주민들은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히며 소용돌이치는 물 울음소리가 20리 밖에 까지 들린다고 하여 ‘울돌목·울두목·울둠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수영 관광지가 서남권 관광 랜드 마크로 변신했다. 2021년 9월, ‘울돌목 스카이워크’와 ‘명량 해상케이블카’가 설치되며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강술래를 모티브 삼아 곡선 모양으로 디자인한 보도교 스카이워크(총길이 110m)는 바닥을 투명유리로 만들었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 위를 걷기 때문에 아찔하고 짜릿하다.
‘명량 해상케이블카’(총길이 960m)는 울돌목을 가로질러 해남우수영 관광지와 진도 녹진 타워를 연결한다. 공중에서 명량해전 승전지인 울돌목과 쌍둥이 진도대교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묘미를 안겨준다.
우수영항은 우수영관광지에서 북쪽방향으로 1.8㎞ 가량 떨어져 있다. 1895년(고종 32년) 폐영(閉營)될 때까지 서남해를 지키던 전라우수영이 자리했던 곳이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법정스님 마을도서관’을 찾았다.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1932~2010) 생가 터에 조성된 마을 도서관 내부에는 스님의 유품과 저서, 사진들로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 외부에는 일명 ‘빠삐용 의자’가 눈에 띈다. 1970년대 순천 조계산 불일암에 계실 때 설해목(雪害木)을 주워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손수 만들었다는 소박한 나무의자는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사각 프레임 속에 법정스님의 뒷모습을 배치한 조망대 포토 존에는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정찬주 작가는 지난 2018년 펴낸 ‘법정스님의 뒷모습’(한결 미디어)에서 법정 스님의 일화를 들려준다. 어떤 방문자가 불일암을 찾아와 스님에게 “텔레비전에서 보던 얼굴과 똑같습니다. 법정스님이지요? 스님, 고향이 어디십니까?”라고 물었다. 법정스님의 답은 이러했다.
“현품을 대조해보니 어떻습니까? 고향이라, 허허허. 그거야말로 내 화두네.”
/글=송기동 song@·박희석 기자 dia@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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