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어낸 ‘과학사의 그때 그 시절’
역사화가 어니스트 보드가 그린 그림 가운데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접종을 하는 장면이 있다. 1773년 고향 마을에 개업을 한 제너는 천연두에 관심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우유 짜는 여자가 소의 천연두(우두)를 앓은 뒤로 인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제너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1796년 최초의 우두를 마을의 소년에게 접종한다. 제너는 우두에 걸린 젖 짜는 여인의 손에 난 수포에서 고름을 긁어 접종용 침에 발랐다. 그리고는 제임스 핍스라는 8살 소년의 팔에 찔러 우두를 감염시킨다. 그런 다음 제너는 핍스에게 여러 물질을 주사했으나, 다행이 어떤 감염 징후도 나타나지 않는다. 우두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모하고 엉뚱한 도전이 의외로 놀라운 발견과 발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역사적인 순간을 그림으로 읽어낸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과학사의 그때 그 시절’을 그림으로 읽어낸 이색적인 책이 발간됐다. 책에는 주로 과학자나 의학자 등이 행했던 드라마틱한 장면을 다룬 그림들이 다수 등장한다.
수학과 과학 관련 대중서를 발간하고 번역작업을 해온 윤금현 번역가가 펴낸 ‘명화로 읽는 과학의 탄생’은 다소 무모하고 엉뚱한 과학자의 열정을 모티브로 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셜록 홈즈 추리 파일’, ‘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와 같은 흥미로운 책을 번역했다.
책에는 공개적인 해부 이벤트 관련 그림부터 빛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었던 뉴턴의 실험 관련 그림, 빅토리아 여왕 무통분만에 얽힌 마취 관련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시신 해부가 허용됐다. 사형수가 대상이었는데 이를 보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했다. 해부 현장을 보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로 인식됐다. 당시 26세 젊은이에게 해부 이벤트 현장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그 청년은 바로 빛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역사적인 렘브란트의 걸작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그림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그린 그림은 아니다. 렘브란트가 상상으로 그린 것으로, 돈을 지불한 사람들은 그림에 등장하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그림 속 사람들은 실존 인물들인 셈이다.
무지개를 일곱 빛깔로 분류하고 햇빛의 진짜 색을 밝힌 이는 아이작 뉴턴이다. 그 뉴턴의 프리즘 실험을 그린 목판화가 있다. 헌데 뉴턴은 17세기 사람이지만 판화는 19세기에 제작됐다. 조각가는 상상으로 뉴턴과 그의 실험을 묘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판화 속 그림은 이렇다. 뉴턴이 프리즘을 통해 문틈으로 들어오는 태양광을 투과시키자 하얀 천이 씌워진 보드 위로 빛줄기가 쏟아진다. 빨주노초파남보, 모두 일곱 빛깔의 색이다. 이 무지개를 다시 프리즘에 투과시키면 하나의 빛, 흰색이 되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흰색은 수천 가지 색깔이 혼합된 색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밖에 책에는 금을 찾던 연금술사들이 금 대신에 얻은 것은 인이었다는 것과, 수은 기둥으로 진공의 존재를 증명한 파스칼, 번개의 정체를 밝힌 벤저민 프랭클린과 피뢰침의 원리 등 과학사에 빛나는 ‘그때 그 시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순간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책에 나오는 과학 이야기들은 비록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이지만 지금도 따라하면 그대로 재현됩니다. 그것이 과학입니다”라며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면 갈릴레이가 찾아냈던 위성 4개를 나도 똑같이 찾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파피에·1만9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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