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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기자

서두르세요…5·18 그날의 현장 한시적 개방합니다

by 광주일보 202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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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광주병원 2층 정신병동.

군사정권 고문수사의 상징이었던 505 보안부대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을 치료했던 국군광주병원,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현장의 흔적이 남아있던 주남마을 등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정작 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던 옛 광주교도소와 적십자병원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특정 시간 외에 출입을 제한하면서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고문수사로 악명, 505 보안부대 =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오는 24일까지 한시적으로 문을 연 505 보안부대는 광주시 서구 쌍촌동에 형태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

5·18 당시 계엄군 사령부의 핵심부대였던 505보안부대는 수많은 광주시민과 주요 인사들이 끌려와 모진 고문을 받았던 국가폭력의 현장이다. 1980년 5월 17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전남대 송기숙 교수와 정동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 12명을 붙잡아 강압적인 조사와 폭력을 휘둘렀던 곳이다.

505 보안부대(사적 제 26호)는 당시 군 정보기관임을 숨기기 위해 ‘무등공사’라는 현판을 내걸고 국민을 상대로 한 비인권적인 행태를 벌였던 곳이다. 1983년에는 5·18 구묘지에 안장된 518희생자들의 가족을 회유해 이장을 유도하는 ‘비둘기시행계획’을 주도했었다.

보안부대 터는 지난 2005년 11월 중단된 이후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국가폭력의 현장으로 복원, 운영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지만 여태껏 공사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505 보안부대 본관동 지하 조사실.
당구대가 놓여있는 505 보안부대 내 휴게실.

나무와 잡초가 무성한 본관 건물에 들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음침하고 스산할 정도였다. 지하 조사실은 송기숙 전남대 교수 등이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곳, 구타·고문·회유 등 인권탄압의 밀실은 비명 소리도 묻힐 듯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연립관사·내무반·탄약고 등도 둘러볼 수 있다. 내무반 옆에는 연행한 시민들에게 고문을 한 수사관들을 위한 휴게공간과 당구대까지 갖춰놓았다.

국군광주병원(사적 제23호) 공간도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방됐다. 국군광주병원은 1980년 5월 19일 제일극장 골목에서 계엄군에 의해 심각한 구타를 당해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곳으로 옮겨진 고(故) 김경철씨가 치료를 받다 숨을 거둔 곳이다. 김씨는 5·18 최초 희생자로 기록된 상태다.

국군광주병원 건물 2층 정신병동은 5·18 가두방송 주인공 차명숙씨가 계엄군에 의해 강제 입원됐던 곳이기도 하다.

2007년 이후 발길이 끊기면서 곳곳에 먼지가 수북히 쌓였지만 5·18 민주화운동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찾아볼만하다.

당시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시민들은 일반 병원들에 견줘 우수한 치료시설을 갖춰 ‘천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영균 당시 병원장과 의료진은 시민군에 의료물품을 지원하는가 하면, 가짜 병상일지를 기록해 시민들이 병원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 시민 학살지’(사적 제 14호)도 해설사 안내를 받으며 둘러볼 수 있다. 주남마을은 1980년 5월 23일, 공수부대원들이 화순으로 향하던 미니버스에 대한 타고있던 15명을 죽이고 2명의 부상자까지 끌고가 살해당한 뒤 암매장한 곳이다.

 

주남마을 학살지를 찾아 해설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학동 주민들.

제 멋대로 문 닫아시민들 헛걸음 = 5·18기념재단과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애초 5·18 사적지 5곳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했지만 정작 광주교도소와 적십자병원 등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임의적으로 공개를 제한,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광주교도소(사적 제 22호)와 광주적십자병원(사적 제 11호)의 경우 개방 방침과 달리, 내부 관람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심지어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사진촬영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교도소는 지난 1980년 5월 29~31일 최초 8구의 암매장 시신이 발견되는 등 현재까지 정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5·18 암매장과 관련된 주요 사적지다. 5·18 40주년 정부기념식에서 편지를 낭독한 최정희씨 남편인 고 임은택씨도 이곳에서 발사한 총격에 숨졌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만큼 40주년에 맞춘 개방 소식에 새벽부터 찾았다가 실망감에 발길을 돌리는가 하면, 헛걸음을 했다며 불만을 터트리는 시민들이 잇따랐다.

19일에도 옛 광주교도소는 개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문을 굳게 닫고 관람객들 입장을 불허했다.

교도소 인근에서 만난 주민은 “지난 17일에는 부산에서 50대 부부가 새벽부터 찾았다가 철문만 보고 돌아갔다”고 귀뜸했다. “이럴거면 뭐하러 개방이라는 말을 쓰는 지 모르겠다”는 말도 방문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법무부 광주소년원측이 자신들 일정에만 맞춰서 임의적으로 개방하는 ‘탁상’ 행정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40주년을 맞아 일반 시민들에게 보여주기로 해놓고 법무부 광주 소년원측이 임의적으로 선택, 열어주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적십자병원도 애초 공개 방침과 달리,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현재 매각절차가 진행중이라 내부 공개는 어렵다는 게 서남학원측 입장이다. 이 때문에 5·18 기념재단과 법무부, 서남학원 측의 무성의한 조치로 애꿎은 시민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십자병원은 5·18 당시 항쟁의 주요 무대였던 금남로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부상자와 사망자들로 가득했던 공간이다. 당시 ‘헌혈에 동참해달라’는 가두방송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긴 줄을 선 사진은 시민들의 연대·공동체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사진으로 유명하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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