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병호기자

5·18 40주년 주남마을의 기억과 치유 <하> 트라우마 극복 노력들

by 광주일보 2020. 5. 17.
728x90
반응형

시대의 아픔 넘어…기억과 치유 통해 문화·인권 마을 탈바꿈

 

지난해 5월14일 광주시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 위령비에서 열린 제6회 ‘기역이 니은이축제’에서 어린이들이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기역이 니은이 축제는 5·18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주남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마을축제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무등산 자락의 한적한 ‘주남마을’ 곳곳에는 주민들 스스로 세운 40개의 ‘솟대’를 발견할 수 있다.

‘솟대’는 과거로부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소통자의 역할을 하며, 인간의 소망을 하늘에 전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남마을의 솟대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다. 40년 전 민간인 집단학살과 계엄군의 주둔으로 주남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을 치유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40년간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주민들의 몸부림이다.

주남마을 주민들도 5·18 이후 30년 동안은 실의와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2010년 마을 안 골짜기 에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면서부터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은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조금씩 바뀌어가는 마을모습에서 40년 전의 고통보다는 주남마을의 아름다운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남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인 미니버스 총격사건의 부상자를 사살해 암매장한 장소에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마을 입구에서 위령비까지 이르는 길은 민주·인권·평화라는 3가지 꼭지로 길을 조성했다.

해당 꼭지의 길에는 3명의 시인(문병란·잔원범·손광은)들이 직접 걸어보고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한 비석이 세워졌다.

2013년부터는 마을 공동체 사업과 연계, 주민들 스스로 ‘문화와 인권의 마을’로 탈바꿈해 40년 전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을을 꾸미며 과거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에 후손에게 아름다운 마을을 이어주기 위한 노력에 온 정성을 쏟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주남마을 경로당을 정비하고 2층에 역사박물관을 조성,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인권교육을 받고 치유의 장으로 이용했다. 1980년 5월 주남마을에 계엄군이 버리고 간 진압봉과 탄약통도 이곳에 전시했다.

주민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기억하고, 치유하는 작업들도 진행됐다.

40년 전 계엄군이 마을에 주둔해 주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공포와 아픔 때문에, 일부 주민들은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 간 소통을 늘렸다. 또 주민들이 각 집마다 새로운 기쁜 소식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체통에 직접 그린 그림을 붙이는 등 40년 전 끔찍한 기억들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1980년 직접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기록한 책인 ‘주남마을이 들려주는 5·18이야기’도 만들었다. 이 책은 주민 31명의 사진과 함께 직접 겪은 이야기와 마을의 역사 등으로 구성됐다.

치유의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주남마을의 삶과 문화, 역사, 이야기 등을 엮어 스토리텔링 북인 ‘지한면 눅두밭 웃머리(과거 주남마을의 명칭) 이야기’도 제작했다.

또 전국에서 518개의 평화의 메시지를 받아 마을 주민들 스스로 이 마을에서 아픔을 견디고 살아온 자부심도 높였다.

마을에서는 2014년부터 매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축제의 방식으로 승화하는 ‘기역이 니은이 축제’(기억하라!녹두밭 웃머리의 초성을 상징)를 개최하고 있다. 5·18 의미를 담아 주민 스스로 모은 기부금과 시보조금으로 행사를 준비한다.

김재림 주남마을 통장은 “40년의 아픔을 어르신들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면서 “앞으로 위령비까지 가는 길이 정비돼 주남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7회째를 맞는 ‘기역이니은이’ 축제는 오는 28일 예정돼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잊혀지지 않는 아픔…“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 쳐진다”

주남마을 주민들에겐 40년 전 참사는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다. “40년이 흘렀어도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는 주민들은 당시의 고통을 가슴 깊이 묻어놓았을 뿐이다. 이들의 가슴 속��

kwangju.co.kr

 

모내기 철만 되면 그날 죽음의 그림자가 목을 조여온다

40년의 세월 동안 아픔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1980년 5월, 일주일 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자연부락마을이지만,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곳이다. 민간인 집��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