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발달장애 삶 그린
다큐멘터리 광주극장 개봉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그림 그리는 ‘작가’ 가장 좋아”
뜨개질 작품 선물할 땐 행복
10일, 서동일 감독과 GV 참여
“제가 그리는 사람들 모두가 예뻐요.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은 없어요. 다 예쁘고 멋져요.”
최근 막을 내린 TV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할로 큰 관심을 불러 모은 정은혜(32)씨가 광주를 찾았다.
배우 겸 화가인 은혜씨는 이번 만큼은 배우 자격으로 광주를 방문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으로서 그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 개봉을 맞아 광주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관객과의 대화(GV)를 앞둔 은혜씨를 3일 광주극장에서 만났다. 인터뷰에는 은혜씨의 엄마 장차현실 PD와 아빠 서동일 감독도 함께했다.
은혜씨는 이날 초록색 바탕의 흰 꽃무늬 원피스와 빨간 구두, 흰색 스카프로 멋을 냈다. 표정도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요즘 새삼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당장 이날 많은 시민들이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은혜씨를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고 했다.
‘니얼굴’은 캐리커쳐 작가로서의 일상과 그녀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다. 은혜씨는 성인이 돼서도 집안에만 박혀 뜨개질만 했다.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서 감독은 은혜씨가 동굴 속에 갇혀있었다고 표현한다. 은혜씨 뿐만이 아닌 모든 발달장애인들의 공통적인 문제로,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이들은 자기만의 동굴에서 상상 속의 친구를 불러내 대화하고 싸울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은혜씨를 표현하게 된 건 ‘그림’을 통해서다. 비언어적 도구인 그림을 통해 소통하기 시작했다. 장 PD와 서 감독은 뒤늦게 이 같은 점을 발견했다. 장차현실 PD와 지난 2007년 ‘가족식’을 올리고 은혜씨의 아빠가 된 서동일 감독은 ‘내 곁에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은혜씨)를 카메라에 잘 담아내면 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2016년 촬영을 시작했다.
은혜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건 지난 2013년 2월 27일. 화실을 운영 중이던 장PD가 집안에만 갇혀있는 은혜씨에게 화실 청소 등 일거리를 맡겼는데 은혜씨가 화실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발견하곤 상상 이상의 그림 실력에 놀랐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한 셈이다.
“애들만 그림을 그리니까 샘이 나서 저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어요”(정은혜)
“그 전엔 그저 치료에만 집중해 있었어요. 부모가 없더라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주기에만 급급했던 거죠. 은혜를 하나의 개성을 가진 존재 라기 보단 그저 장애인 딸로만 생각했습니다. 은혜의 그림을 보고 놀랍고 기뻤어요. 제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죠.”(장차현실 PD)
은혜씨는 영화 촬영이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책임감이 있게 주문받은 그림을 그리는 데만 몰입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탓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됐다. 그림을 그리면서 배고픔을 참는 게 힘들었다며 힘든 점이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화는 지난 2020년에 완성됐지만 바로 개봉 하지 못했다. 은혜씨의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때문. 노희영 작가는 드라마상의 설정을 철저히 숨겨져길 바랐고 가급적 드라마 방영 종료시점까지 은혜씨가 노출되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을 전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얘기가 나오자 은혜씨의 눈빛이 반짝였다. 드라마 촬영은 특별한 연습보단 현장에서 배우들과 맞춰보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상업드라마에 발달장애인이 출연한다는 것이 걱정됐지만 배우들은 물론 촬영스탭들 모두 은혜씨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본인 주연의 영화와 TV드라마에까지 출연했지만 은혜씨는 누가 뭐래도 ‘그림’이 가장 좋다고 했다. ‘작가’라는 호칭 역시 가장 좋아한다. 은혜씨는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20명 동료 화가들과 그림을 그려 월급을 받는 ‘예술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이 가장 그림 그리는 게 즐거운 때라고 했다.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고 회식도 하며 자신만의 화실까지 갖춘 지금 말이다. 오는 8월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연다.
은혜씨는 인터뷰 내내 뜨개질을 멈추지 않았다. 동굴 속을 나와 뜨개질을 멈춘 줄 알았지만,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 과거엔 아무런 의미 없이 실을 엮었다면 이제는 뜨개질에도 의미가 생겼다.
선물할 사람이 생기면 실을 엮는다. 은혜씨는 연두색, 빨간색, 보라색으로 층층이 짜인 목도리를 누구에게 선물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 질문에 “양평시설에서 일하는 김병만씨의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목도리”라고 했다.
은혜씨는 오는 10일 오후 3시 30분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열리는 GV에 서동일 감독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김민석기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성미 미술사 “수학 어렵지 않아요, 그림과 함께 라면” (0) | 2022.07.10 |
---|---|
듀엣, 트리오… 실내악으로의 초대 (0) | 2022.07.10 |
“어둠 속 한줄기 빛…음악 통해 자신감 가졌으면” (0) | 2022.07.04 |
전 KIA 윤정우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생활 홈런만큼 짜릿합니다” (0) | 2022.07.04 |
여름 성수기, 광고시장이 뜨거워진다 (0) | 2022.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