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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7

[서효인의 소설처럼] 구도의 애도 - 유영은 외 ‘구도가 만든 숲’ 최근 출간된 신예 작가 단편 앤솔러지의 표제작이자 신인 작가 유영은의 신작 단편인 ‘구도가 만든 숲’은 꽤 의뭉스러우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인 ‘구도’를 바라보는 화자 ‘나’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에 위치한 J시에 사는 구도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냉면집의 주인이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는 그 소식을 알려준 옛 아르바이트 동료인 나를 무작정 찾아온다. 나는 죽은 사장님의 조카로 그 가게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일상은 전과 같다. 여름이면 매일을 허둥지둥 보내지만, 성수기가 지나고 겨울이 오면 “여분의 시간에 목이 졸리는 것”을 느끼며 그저 버틸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구도의 방문은 뜻밖일 수밖에 없다. 그는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자에 불과했고, 이모의 조카라거나 친인척이 아닌데다 .. 2022. 11. 5.
[서효인의 ‘소설처럼’]어떤 비관 - 안녕달 『눈, 물』 어떤 상실은 운명이다. 우리는 대체로 정해진 운명을 따르되, 그 따름의 과정을 애써 잊고 산다. 죽음이 특히 그렇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음의 공포에 질려 일상을 해칠 수는 없다. 죽음보다는 삶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거대한 상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가 전부이고,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제대로 애도할 수 없다면, 되돌아올 삶에 죽음은 영향을 미친다. 상실의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제대로 잊기 위해서는 무결에 가까운 애도가 필요하다. 실컷 울어도 좋고, 마음껏 추억해도 좋다. 울음과 추억 속에 상실된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드러날 것이기에. 안녕달 그림책 『눈, 물』은 예정된 상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이야기이자, 어른.. 2022. 10. 10.
[서효인의 소설처럼] 편의점 사람들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동네마다 편의점이 있다. 아니,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다. 1990년대 일종의 신사업으로 등장한 편의점은 최근까지 확장 일로였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로서 규모의 경제에 성공해 슈퍼마켓은 물론 구멍가게와 소형 마트까지 접수하였고, 이제는 그 숫자와 밀집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상권이 위축되면서 편의점도 그 활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2020년 기준 전국 편의점 숫자는 4만 개가 넘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하루면 배달이 완료되는 인터넷 몰도 우후죽순 생겼다. 이렇듯 경쟁은 심해졌고, 인건비와 기타 비용은 상승하는 동시에 24시간 운영이라는 족쇄는 여전하니, 동네 장사라고 하여 마냥 편하고 안정적일 리가 없는 것이다.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주된.. 2022. 3. 27.
[서효인의 소설처럼] 옛이야기의 아름다움-백희나 ‘연이와 버들 도령’ 아내는 어릴 때 ‘연이와 버들 도령’ 이야기가 슬퍼서 싫었다고 말했다. 딸아이는 ‘연이와 버들 도령’ 속 장면들이 조금 무서웠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몰라서 두리번거리는데, 거실에 백희나 작가의 신작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것이다. 나는 주문한 책이 무엇인지, 그것이 배송됐는지 어쨌는지도 몰랐던 것이고. 옛이야기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책 표지를 봐도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책장을 펼쳤다. 아이가 곁에 왔고, 나는 첫 번째 독서를, 아이는 두 번째 독서를 이제 막 시작했다. 몇 번이나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즐거우니까. 백희나 작가의 진가를 많은 사람이 알아보게.. 202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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