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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옛이야기의 아름다움-백희나 ‘연이와 버들 도령’

by 광주일보 202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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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릴 때 ‘연이와 버들 도령’ 이야기가 슬퍼서 싫었다고 말했다. 딸아이는 ‘연이와 버들 도령’ 속 장면들이 조금 무서웠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몰라서 두리번거리는데, 거실에 백희나 작가의 신작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것이다.

나는 주문한 책이 무엇인지, 그것이 배송됐는지 어쨌는지도 몰랐던 것이고. 옛이야기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책 표지를 봐도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책장을 펼쳤다. 아이가 곁에 왔고, 나는 첫 번째 독서를, 아이는 두 번째 독서를 이제 막 시작했다. 몇 번이나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즐거우니까.

백희나 작가의 진가를 많은 사람이 알아보게 된 지는 오래되었다. ‘구름빵’에서 시작하여 ‘알사탕’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착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을 탄생시켰고, 일상의 면에 상상의 선이 드라마틱하게 맞붙었다 떨어지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그의 그림과 글이 비로소 백희나의 ‘그림책’을 만든 것이다.

근래에 케이팝이니 한류니 하여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나라 콘텐츠가 많지만 그중 그림책은 높은 수준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유수의 상을 받고 수출되면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 백희나 작가가 굳건한 중심을 잡아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의 수상은 그 숱한 증명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에는 구전되는 이야기를 옮겼다.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기보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데 힘쓴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버들잎 도령’으로 알려져 있다. 소녀는 늙은 여인과 함께 산다. 여인은 소녀를 실컷 부려먹고 골탕 먹인다. 한겨울에 상추를 구해 오라는 식이다.

상추를 구하려고 겨울 숲을 헤매던 소녀는 추위를 피해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 동굴의 막다른 길의 돌문을 열어젖힌다. 거기에는 버들 도령이 있다. 버들 도령은 소녀에게 도움을 주고 다음에는 “버들 도령! 버들 도령! 연이 나 왔다. 문 열어라” 하고 말하면 문을 열어 주겠다고 말한다. 소녀는 늙은 여인에게 버들 도령에게서 얻은 상추를 가져간다. 늙은 여인은 소녀를 수상하게 여긴다.

중간까지 읽고야 이 이야기의 앞뒤와 뼈대가 기억났다. 아이를 부려 먹는 계모, 계모의 악독함을 천진한 노력과 부지런함으로 견디는 아이, 그런 아이를 돕는 신비하고 친절한 조력자. 계모는 벌을 받을 것이다. 조력자는 마법과 요술을 부릴 것이다. 아이는 행복해질 것이다. 백희나의 이야기도 구전되는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르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더 슬프고, 예정된 결말인데 더욱 따뜻하다. 현실의 겨울 숲에서 환상의 동굴 안 따스한 봄날로의 극적인 전환이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쥐고 있는 듯 조용하고 아련한 소년 소녀의 표정이 슬픔을 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기나긴 시간을 버티고 내려온 이야기 자체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살려 낸 작가의 용하고 귀한 재주 덕일지도 모르고. 아마도 이 모든 게 충분한 사실일 것이다.

책에서 ‘늙은 여인’은 옛이야기에서는 주로 ‘계모’로 표현된다. 책의 뒤에 실린 참고문헌 목록을 보더라도 이야기의 원형은 계모의 악행을 다룸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본래 이야기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지금의 관점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만 짚어 낸다. 이 시대의 윤리적 요구를 옛이야기가 갖추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옛이야기는 달큰하고 또한 시큰하다.

이야기의 끝에서 책은 버들 도령을 가여워하는, 그를 애도하는 연이와 살점이 타 버려 뼈만 남은 버들 도령을 나란히 놓는다. 남은 자의 슬픔과 떠난 자의 가여움을 하나로 놓는다. 버들 도령이 남긴 꽃으로 인해 둘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작품은 옛이야기의 플롯과 문법을 충실히 따르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이 애도의 한 장면이다.

한때 어린이였던 아내는 이 이야기가 슬펐다 했다. 지금 어린 딸아이는 조금 무섭다고 했다. 몇 번째 읽은 지금 우리 모두는 이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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