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학교’ 모티브로 바람직한 교육 그리고 싶었다”
86년 남도시골학교 배경…‘교육민주화선언’등 다뤄
구례 산중에서 토굴 짓고 텃밭 가꾸며 창작 활동
교사인 강정희 소설가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폭풍우 치는 밤바다에서 등불 하나 들고 노를 저어 여기까지 학교를 데리고” 왔노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역사가 많은 이의 마음에 빛으로 남기를 소망”한다고.
전직 교사였던 한상준(68) 소설가가 장편 ‘1986, 학교’(문학들)를 펴냈다. 제목의 ‘1986’과 ‘학교’는 다분히 시대적 상황을 환기시킨다. 예상대로 작품은 1986년 남도의 한 시골학교를 배경으로 당대 교육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번 소설을 완간하기까지 무렵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교조 결성과 관련해 해직된 이후인 1990년부터 쓰고 덮고 꺼내길 반복했으니까요.”
한 작가는 장편소설을 펴내게 된 소감을 그렇게 말했다. 한 편의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무려 30여 년의 ‘발효’를 거쳤다는 것은 어쩌면 필생의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으리라.
작품 발간 소식을 듣고 이뤄진 통화에서 그는 “구례 어느 산 중턱에 토굴을 짓고 텃밭도 일구며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벗하며 지낸다”고 했다. ‘구례에서 아예 거주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순천에서 거주는 하지만 구례를 오가며 이런 저런 일을 한다”고 했다.
6년 전에 퇴직을 한 그는 반드시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던 시골 학교에서의 삶을 소설로 그리고 싶었다. “쓰지 않고는 부채감으로부터 놓여날 수 없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 내내 그를 붙잡았다고 한다.
언급한대로 소설 배경은 86년 남도의 시골 학교다. 저자에 따르면 상상에 의해 쓴 픽션이지만 실재적 경험이 바탕을 이룬다. 86년에는 ‘교육민주화선언’이 있었고, 더욱이 당시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작품 속에서 교사들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점차 지쳐간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독서감상반 활동(솔뫼회)을 매개로 현실 상황을 인식해간다. 문제는 학생회와 학생회장을 간선제로 운영하겠다는 교장파와 전교생이 모두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선생들이 대립하면서 갈등은 증폭된다. 결국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징계와 자퇴라는 파국을 맞이한다.
소설 속 장호준 선생은 이렇게 자책한다.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패배를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이야기는 86년 5월 10일 전국에 있는 YMCA중등교사협의회(Y교사회)가 교육 민주화를 동시 선언하는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척박한 학교 현실에서 나름 바르게 가르치려 했던 수많은 교사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아이들 중심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교무실에서 벌어지는 교사들의 일상과 삶을 톺아보고도 싶었지요. 그 같은 풍경을 매개로 과연 학교는 어떠해야 하고 학교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당시의 현실은 그렇게 핍진하게 묘사된다. 픽션(fiction)과 사실(fact)이 절묘하게 접합된 팩션(faction)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시골학교 학생들의 ‘시위 사건’으로 한 작가는 당시 감봉처분과 함께 강제 전보되고, 이후 89년 전교조와 관련 해직을 당하기에 이른다.
사실 농산어촌의 학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 소외가 극심하다.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 모습은 그들의 현재”라는 한 작가의 말에서 우리 교육의 단면이 읽혀진다. 그는 “학교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곳이고 교육은 미래의 삶을 보장해주는 확고한 담보물인 측면이 강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학교와 학교교육은 갈등이 깊이 내재화돼 있는 지점”이라고 언급했다.
퇴직을 한 지 올해로 6년째. 종종 후배교사들로부터 학교 이야기를 듣는데 “난맥”이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물론 난맥의 경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학교교육의 외적 환경이나 외적 지향점은 고무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듯한데 교직사회의 중심체라 할 수 있는 교원들의 교육에 대한 사유는 치열하지 않나 하는 인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향후 그는 구상해 둔 장편을 쓸 작정이다. “몇 차례 잡았다고 높았는데 이제는 놓지 않으려 한다”며 웃었다.
한편 정의연 소설가는 “작가 한상준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었을 이 이야기는 그 저항의 문학적 증언이자 아이들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한 성장담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때의 상황과 그들의 처지가 생생하게 되살아나 여러 번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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