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예술’ 복합문화공간···차분하고 정적인 ‘블랙’ 통일
진열대·테이블 모두 오브제 아트···디자이너·아트디렉터 김유나 대표
미완성·불완전·불균형 그대로···‘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 제작
깊어가는 가을, 진한 커피향에 이끌려 들어갔는데 개성있는 조각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독특한 디자인의 주얼리들이 진열돼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감상을 하고 있는 이도 보인다.
카페인지, 갤러리인지, 아니면 주얼리숍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곳은 ‘공간이 예술이 되는’ 복합문화공간 ‘No.8 in bminor(넘버에잇트 인 비 마이너)’다.
“제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다양한 주얼리와 아트 오브제를 보여드리는 쇼룸(showroom)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간에 입장했을 때의 시각적 작품들과 만졌을 때의 촉각, 음악, 향, 그리고 이 안에서의 커피 한잔까지 제가 제안하는 다양한 오감(五感)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 제각각이 아닌,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느낌을 받기 바랍니다.”
공간을 소개하는 이는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인 김유나(29) 대표다. 주얼리 판매장은 많지만 차를 마시며 예술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쇼룸 형식은 찾아볼 수 없기에 더 흥미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브랜드명인 ‘No.8 in bminor’는 비단조(bminor)로 시작되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미완성’을 뜻한다.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진 곡 임에도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칭송받고 있는 곡이다. 김 대표는 이 곡에 영감을 받아 ‘미완성 된 완성’을 슬로건으로 지난해 5월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존재 그대로도 가치가 되는 미완성, 불완전, 불균형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쇼룸은 지난 7월 오픈했다.
“‘이게 완성이다’라는 정답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진 않아요. 처음엔 ‘이렇게 만들어야지’ 시작을 했다가 작업 과정에서 마음에 들면 그 자체로 마무리를 하는 거죠. 실수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게 예쁘면 그 상태에서 완성품으로 마무리하는 거에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던 김 대표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틀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개운치 않았다.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포인트를 보여주고 싶은 갈망이 컸고, 이제는 넘버에잇트 인 비마이너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실버(은) 주얼리는 기계로 균일하게 찍어내는 기성화 된 제품이 아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으로 제작된다. 실버에 들어가는 크랙(균열)은 비마이너 브랜드의 시그너처 제품이다. 반지나 목걸이, 팔찌 등 전체적으로는 같은 디자인이지만 안에 표현되는 균열은 하나하나 다르게 작업이 되기 때문에 본인만 가지고 있는 하나뿐인 주얼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은의 존재 가치를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내구성이 필요한 체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99.9% 순은을 선호한다. 시즌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컨셉트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이전 시리즈가 크랙이었다면, 10월초 공개되는 F/W 시즌 디자인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블균형한 팬던트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실해 착용했을 때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디자이너로서 내 작품, 내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은 정말 큽니다. 학교 다니면서 늘 들었던 이야기가 ‘이게 왜 완성이냐, 이게 왜 예쁘다고 생각하냐’라는 말이었어요. 제 브랜드를 만들고, 제가 생각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건 저에게는 큰 ‘실험’이었는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공간에 설치된 주얼리 진열대나 테이블도 모두 김 대표가 직접 제작한 오브제 아트다. 불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브랜드답게 테이블마다 디자인이나 패턴이 다르고 조각의 크기나 소재도 모두 불균형하다. 철망으로 굴곡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석고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불균형한 형태를 표현했다. 한 가지 재료만 사용하면 느낌이 비슷하기 때문에 돌을 붙이거나 다양한 재료를 섞거나 발라보면서 작업한다.
크기나 모양은 다르지만 컬러는 블랙으로 통일했다. 실버 주얼리가 돋보이면서 굴곡을 가장 잘 보여주는 컬러가 블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이라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미완성적이고 불균형한 조각 위에 결이 비슷한 실버를 올려서 하나같은 느낌을 갖게 했어요. 단순히 ‘진열대 위에 주얼리를 올린’ 것이 아니라 주얼리도 작품이라고 생각해 두 작품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차와 음악도 공간과 하나가 된다. 김 대표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 제각각인 느낌이 아니라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떠한 정의 없이 무언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의 공상적인 느낌의 음악을 선별한다.
커피는 일본에서 원두 로스팅 챔피언을 했다는 전문가에게서 커피를 배우고 원두를 받아 사용한다. 카카오 본연의 단 향과 견과류의 향미를 바탕으로 은은하게 느껴지는 베리의 달큰한 향이 느껴지는 고급 블렌딩 원두다. 에스프레소 추출시 거품이 풍부해 입 안에 느껴지는 촉감도 부드럽다.
“커피맛이 어설프면 공간에 피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를 찾으시는 분들에게는 커피맛이 이 곳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간만큼이나 자신있는 커피를 내보자는 각오로 배웠습니다.”
음료는 커피, 에이드, 차 종류를 선보이고 디저트는 아보카토, 아이스크림, 수제초콜릿으로만 제한한다. 테이블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보니 작품 보호를 위해 케이크류의 디저트는 판매하지 않는다. 음료 주문시 나오는 테이크아웃 컵 홀더에 적힌 QR코드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추면 비마이너 공식 홈페이지로 연결돼 차를 마시면서 온라인숍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쇼룸은 광주시 남구 봉선동 남부경찰서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다. (용대로 74번길 11-1 제상가동 1층) 주위에 높은 아파트가 많지만 이곳 만큼은 복잡하지 않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동네가 좋았고, 밖에서 보이는 건물의 모습에 한눈에 반해서 내부는 들여다보지도 않은채 바로 계약을 했다는 김 대표. 무모한 행동이긴 했지만 다행히 문제없이 쇼룸을 오픈할 수 있었고 찾아오는 이들도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김 대표는 “쇼룸을 처음 선보인 광주에서 ‘No.8 in bminor(넘버에잇트 인 비마이너)’ 브랜드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다음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공간을 오픈해보고 싶다”며 “각각의 공간마다 다른 매장이지만 슬로건은 같은, 그래서 서울 매장에 가본 분들이 광주의 매장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브랜드와 공간들을 늘려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쇼룸 오픈시간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며, 월요일은 휴무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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