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문학관
‘자유와 저항의 시인’ 발자취 담아 2013년 개관
작품 생활 했던 도봉구에 본가·묘·시비 자리
연보·육필원고·유물 등 전시…3층엔 문학도서관
#김종영미술관
북한산 자락에 2002년 건립…건물 자체가 조각 작품
2021년은 서울과 ‘인연’을 맺은 두 예술가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는 해다. 한국 현대문학사의 큰 획을 그은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이자, 추상조각의 대가 김종영(1915~1982)의 예술혼이 숨쉬고 있는 김종영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비록 활동 장르는 다르지만 두 거장의 예술공간은 수십 여 년이 흐른 지금도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수영문학관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난다….“(김수영의 시 ‘풀’중에서)
서울 도봉구에 자리한 김수영문학관(서울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의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눈에 익숙한 시 한편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인의 대표작이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발표된 유작시 ‘풀’이다. 전시장의 흰벽에 그의 필체로 쓰여진 시를 본 순간, 엄혹한 시대를 온몸으로 맞섰던 시인의 결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파란색 하늘 아래, 바람에 ‘나부끼는’ 풀밭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 시와 함께 곁들여져 뭉클함을 더한다. 지난 2013년 11월 문을 연 김수영문학관은 ‘자유와 저항의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치열한 문학적 발자취를 담고 있다.
서울 종로에서 출생한 김수영의 문학관이 도봉구에 들어선 건 그의 문학적 자양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42년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연출수업을 받은 그는 광복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시 ‘묘정의 노래’를 ‘예술부락’에 발표하며 도봉구에서 본격적인 시작(詩作)생활을 펼쳤다.
실제로 도봉구에는 그의 본가와 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장소성에 주목한 당시 이동진 구청장은 지난 2012년 도봉서원 복원, 둘리뮤지엄 착공 등 전통과 현대문화가 어우러진 ‘문화도봉’의 슬로건을 내걸고 김수영문학관 건립을 추켜들었다. 특히 구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으로 가꾸기 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에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방학3동 문화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이 때문에 김수영문학관에서는 인근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주민들이 슬리퍼를 싣고 동네마실을 나온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소박한 분위기다. 관공서 느낌의 틀에 박힌 문학관과는 달리 나무로 형상화한 ‘김수영 문학관’ 간판과 모던한 느낌의 건물 외관이 돋보인다. 1층은 시인의 삶의 궤적을 연대순으로 구성돼 있다. 6·25 한국전쟁과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 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며 치열하게 써내려간 시, 산문의 육필원고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 한켠에는 시인의 생애를 그 당시 사회상과 함께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영상코너도 꾸며져 있다.
2층은 절대 자유를 추구했던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신, 원고를 쓰던 식탁과 생전에 즐겨 읽었던 서적들이 비치된 시인의 서재로 구성돼 있다.
3층의 문학도서관은 김수영문학관의 힘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기념관 위주의 여타 문학관과 달리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열람실과 휴게실이 자리하고 있다. 4층에는 낭독회, 문학강연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강당이 들어서 있다.
#김종영미술관
국내에는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들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가 지자체의 지원이 없는 사립미술관이다 보니 만만치 않은 운영비 때문에 상당수의 미술관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둥지를 튼 김종영미술관은 매우 이례적인 곳이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는 ‘장수’ 미술관인데다 매년 4차례의 기획전과 청년작가전, 김종영미술상, 시민대상 강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 마침 미술관에서는 이지은 작가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일생을 미술교육에 헌신한 우성(又誠) 김종영(전 서울대 미대 교수)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작가 1명을 선정하는 행사로 올해는 이지은씨가 영예를 차지했다.
특히 미술관은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아 대형 조각전이 아닌 ‘화가의 글씨, 서가의 그림’ 전을 기획했다. 서화와 미술의 단절시대로 불리는 20세기 한국 미술계에서 당당히 서화를 ‘서화미술’로 끌어 올린 중광 스님, 문자추상의 대가 이응노 화백, 서양화가 김환기·정규·한묵,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등 11명의 작고 작품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김종영 작가의 글씨도 출품돼 눈길을 끈다.
김종영미술관의 학예사 오보영씨는 “우성은 조각가이지만 동요 ‘고향의 봄’에 등장하는 꽃대궐이 생가일 만큼 어려서 부터 사대부 가문의 영향을 받아 서예와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면서 “그가 남긴 2000여 점의 드로잉 컬렉션은 문인들의 자필원고 처럼 거장의 추상조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종영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이다. 북한산 자락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미술관은 지난 2011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주인공 차승원(독고진 역)의 집으로 나올 만큼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지난 2002년 12월 우성의 20주기를 기념해 유가족이 건립한 미술관은 본관(불각재, 지하 2층)과 지난 2010년 지은 신관(사미루, 지하1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3층 건물(500평)이다. 본관은 주로 김종영의 조각작품 100여 점 포함 컬렉션(3000점)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며, 사미루는 김종영미술상 수상자 초대전 등 신진작가들을 위한 무대다. 매 순간 달라지는 자연의 빛,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공간으로 설계된 미술관은 지난 2003년 서울시 건축대상과 아천 건축상, 2004년 건축가협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미술관은 유가족 등이 주축이 된 우성김종영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특히 조각전문미술관으로서 평생 동안 후학들을 양성해온 김종영작가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연구와 교육 중심의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난 1990년 45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김종영 조각상’을 시상한 데 이어 2016년 부터는 나이와 장르의 제한을 철폐한 ‘김종영 미술상’으로 확대 개편해 시행중이다. 또한 평창동주민센터와 손잡고 주민들의 문화마인드를 높이는 미술교양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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