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 (11) ‘황금양복점’ 김일락 대표
TV 탤런트 꿈꾸던 연극 배우, 세계 기능대회 금메달 따려 직업 전향
후학 양성위해 자비들여 재단 기술 전수
50년 양복장이 외길을 걸어온 김일락(73) 황금양복점 대표.
충장로4가에 있는 그의 가게는 첫 인상부터 감각이 남다르다. 단정한 정장은 물론 세로로 절반씩 나눠 검은색·흰색을 대비시킨 독특한 센스가 돋보이는 옷도 있다.
“요즘은 체형이 까다로워 기성복을 입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한 번 맞춤 양복을 입어보면, 단번에 차이가 느껴지죠. 소재가 좋은 것은 물론 수작업으로 한땀 한땀 만든 디테일이 살아있고, 10년을 입어도 새것처럼 튼튼하거든요.”
광주에서 터를 잡은 지 30여년, 그는 양복업 입문 계기도 독특했다.
어린 시절 김 대표는 탤런트를 꿈꿨다. 전북 출신으로 서울 서라벌고를 졸업한 뒤 연극 무대를 누볐다. 실력을 갈고 닦아 예술대학으로 진학, 유명인이 되겠다는 장대한 계획도 있었다.
그 때 친구로부터 우연히 들었던 ‘소문’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세계 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대통령이 직접 목에 메달도 걸어주고 동네에서 카 퍼레이드도 해 주는데다 연금까지 나온다’는 것.
이 한 마디가 김 대표의 오늘을 만들었다. 그는 ‘금메달’을 목표로 70년대 최고 양복명장으로 손꼽혔던 고(故) 이성우 선생에게서 기술을 배웠다.
우연찮게 시작했다지만, 그에겐 남다른 재능과 감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1976년 5월 광주 기능경기대회 금메달, 같은해 9월 전국기능경기대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79년에는 양복 부분 2급 기능사, 이듬해엔 1급 산업기사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그가 광주에 가게를 차린 건 지난 1990년. 김 대표는 당시 7명 직원이 쉴새없이 일해야 할 만큼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돌아봤다. 매일같이 손님의 사이즈를 재고, 원단을 가봉(假縫)하며 땀을 흘렸던 김 대표는 지금도 직접 줄자를 들고 손님을 맞는다.
후배 재단사를 이끄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김 대표는 최근 가게에서 자비로 재단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가르친 수강생이 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자기 가게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기술을 많이 배워 연마해야 하는데, 양복 부문은 배우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광주 시내 양복점도 옛날엔 400곳에 달했는데, 이젠 30곳 정도죠. 저를 통해 우리 대를 이어갈 이들이 생긴다면, 그것도 보람찬 일이죠.”
김 대표는 “옷을 맵시 있게 입는 것은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며 “앞으로도 좋은 자재와 퀄리티로 만든 양복을 손님들께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영상·편집=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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