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오지 말라” 자녀·손자들에 전화하고 친척 만남 자제
종손 부부들만 차례 지내 … “그리운 마음은 함께 나눠야”
매년 명절 때면 찾아오는 문중 식구들과 종친들로 종가(宗家)는 명절 며칠 전부터 분주하다. 고요하기 그지 없는 시골 마을조차 추석 명절은 북적대는데, 종가는 오죽할까. 차례에 참석하는 인원만 100명에 가깝고 문중 식구부터 시댁에 들렀다가 친정을 방문하는 누나·고모들까지 머무르면 사랑채, 안채, 행랑채도 가득 찬다.
음식 장만은 더하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 마를 날이 없는 게 우리네 종가다. 떡을 하는 데만 쌀 두 가마가 넘게 들어가는 게 추석명절이다. 차례상에, 먼 길을 오는 반가운 가족들과 종가를 찾는 손님상까지 차리려면 손놀림이 바쁠 수 밖에 없다.
무려 500년, 10대에 걸쳐 변함없이 이어져오며 달라질 것 같지 않던 종가의 모습이 올해는 180도 바뀌었다. 일흔 살, 여든 살을 넘은 종손들이 나서 문중 식구들에게 ‘이번 추석엔 고향에 오지 말라’며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성묘도 ‘드라이브 스루’로 진행키로 했다.
그래도 멀리 떨어진 가족에게 전하는 고향의 정(情)마저 변하진 않았다. 함께 모이지 못한다고 해서 조상과 가족에 대한 마음이 옅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애틋해지는 모습이다. 전화로 넉넉한 한가위 마음을 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종가 식구들이 많았다.
사상 초유의 ‘언택트(비대면)’ 한가위로 달라진 전남지역 종가들의 추석 풍경을 들여다봤다.
담양 소쇄원에 터를 둔 ‘제주 양씨’ 종가는 이번 추석 차례에는 9명만 참석한다. 평소 추석 차례상 앞에 모이는 최소 인원은 22명이다. 15대 종손인 양재혁씨는 추석을 앞두고 일일이 친인척들에게 “올해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자”며 만남을 자제하자는 전화를 드렸다. 양씨는 “평소 추석 차례를 지낼 때면 종친 외에도 시댁에 들렀다 친정을 찾는 누님과 고모들 포함하면 50명 가까이 모이는데, 올해는 오지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며 “명절 때 아니면 만나기가 쉽지 않아 아쉬워하는 친척들이 많았지만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추석 당일에 종가를 찾는 문중 식구들이 80명을 넘었지만 이번 추석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귀성 자체를 삼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식사 문화도 달라지게 됐다. 양씨는 “추석 차례상을 간소화할 수는 없지만 손님상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평소보다 마련해야 할 음식량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언택트’ 한가위는 제주 양씨의 300년 성묘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제주 양씨 가문은 추석이면 차량 5대에 나눠타고 조상 묘역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에 어린 조카들의 건강을 우려, ‘드라이브 스루’로 대신할 예정이다.
‘남파고택’으로 유명한 나주 ‘밀양 박씨’ 종가(규정공손 청제공파)도 사상 초유의 한가한 추석 명절을 준비중이다. 당장 서울에 살고 있는 종손 박경중(74)씨 큰 아들의 추석 방문 일정이 불투명한 상태다. 300년 종가에서 종손을 잇는 큰 아들이 빠진 채 차례를 지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박씨 설명이다.
박씨는 “큰 아들 자녀가 초등학교 3·5학년이라 (올지 말지) 고민중”이라고 했다. 종손인 박씨 등 9남매 가족들도 모두 참석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모두 참석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찾아오는 종친들도 예년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이자 종부 강정숙(70)씨는 올해 준비할 추석 음식량을 줄였다. 강씨는 “올해는 평소보다 준비하는 음식량을 많이 줄일 것”이라며 “아들네도 오지 않을 것 같고, 음식 싸가려는 식구들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손놀림이 한가하진 않다. 준비한 차례상을 먹을 식구들이 줄었다고 해도 과일 세 종류와 나물 세 종류, 19인분의 밥과 국 등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 가짓수는 예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명절 때면 종친들로 가득찼던 사랑채, 안채, 문간방 등 남파고택 7개 별채도 모두 사용할 것 같지 않다는 게 종손 박씨 설명이다.
전남지역 종가 중 가장 오랜 6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나주 임씨’ 종가도 30명 안팎이 참가하던 평소와는 달리, 올해 추석 차례에는 종부와 시동생 등 3명만 모이기로 했다. 또 장흥고씨 종가도 종손 부부만 차례상을 차릴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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