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보고서 이대론 안 된다 <2> 왜곡 불씨 안고 있는 보고서
무기고 피탈 시점 등 부실 조사
시민군 선제 무장설 등 왜곡 우려
조사 결과, 법원 판결보다 퇴보
광주 시민들 “우려가 현실로” 탄식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의 개별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자 광주시민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탄식이 나왔다.
계엄군은 물론 광주시민도 책임이 있다는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기저에 둔 증언과 조사 내용들을 수록하면서 오히려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등 왜곡의 불씨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광주시민사회와 오월단체 등은 보고서 폐기 등을 주장하며 “오류의 역사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으로 진상조사위는 5·18 당시 금남로 발포경위에 대한 사실규명에서 결정적 한계를 보였다.
진상조사위는 ‘권용운 일병 사건’에 대해 증언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진상불능결정을 내렸다. 권 일병을 친 장갑차가 계엄군 장갑차인지 시민군 장갑차인지 특정할 수 없고 총상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권 일병 사건은 계엄군의 ‘자위권 차원의 발포’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다. 계엄군은 1980년 5월 21일 권 일병이 돌진하는 시위대의 장갑차에 치여 숨지자 자위권을 발동해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계엄군은 “시민군이 권 일병을 권총으로 쏴 사살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 중 국민의힘 추천 위원들이 진상불능 결정의 근거로 활용한 것도 “검시 조서를 확인한 결과 사인이 ‘총상’으로 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광주고등법원은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항소심에서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의해 숨졌다는 내용은 허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가 과거 법원 판단보다 후퇴한 결론을 낸 것이다.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왜곡인 ‘전남 일대 무기고 피습 사건’에 대해서도 부실한 결론을 내놨다. 오히려 기존 조사보다 퇴보한 결론을 내놓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 보고서에서는 일부 무기고 피탈 시점이 엇갈리고, 부실 조사로 인해 ‘진위 여부 확인 불가’ 결론을 내는 등 문제가 발견됐다.
이 보고서는 전남도경상황일지를 인용해 시민군의 무기 피탈이 오전 9시께 나주 무기고를 피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시민군이 계엄군의 집단발포에 앞서 ‘선제 무장’을 했다는 계엄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광주지방법원, 전남도경찰청 등이 과거 전남도경상황일지가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과거 조사에서는 전남도경상황일지에 경찰이 보유하지도 않은 경찰 장갑차가 피탈됐다고 적혀 있거나 표지와 본문의 내용이 상이하고, 당시 경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한자 표기 방법과 다른 표기 방법이 사용된 점 등이 다수 발견됐다.
가해자인 계엄군의 진술을 검증 없이 무차별 인용하고 나열하는 식으로 보고서가 작성된 점도 하자로 지목되고 있다.
보고서에 인용된 계엄군 진술에 대한 검증 절차는 생략됐으며, 1995년 검찰 수사에서 번복된 바 있는 계엄군의 진술을 아무런 부연 설명없이 그대로 전재하기도 했다.
더구나 보고서에는 계엄군 입장을 대변하거나 광주시민을 학살한 당사자들에게 섣불리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문구까지 포함됐다.
‘군·경 피해’ 보고서에는 ‘대다수 계엄군은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는 결론에 더해 ‘계엄군은 가해자, 광주시민은 피해자라는 흑백논리가 만연해 있다’,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대해 폭력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등 오히려 피해자인 광주 시민들을 탓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계엄군 누군가의 진술을 검증 없이 조사결과 보고서에 싣고 ‘시민군 오전 무장설’ 등 왜곡 근거로 쓰고 있으니 황당한 일”이라며 “보고서가 수정되거나 폐기되지 않으면 국가차원의 보고서가 5·18 왜곡을 공식화하는 사례로 남게 될 것이며, 어렵게 제정한 5·18왜곡처벌법까지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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