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된 최 사장은 널금저수지 사용권을 획득하고 양어장을 만든다. 그는 저수지 감시를 이곡리 한량 임종술에게 일임한다. 얼떨 결에 완장을 두른 종술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하무인의 행동을 일삼는다.
한국문학의 고전 윤흥길의 ‘완장’의 줄거리이다. ‘완장’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특별판이 출간됐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힌 권력의식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작가인 나를 일개 미물 같은 존재로 전락시킨 거대 권력에 효과적으로 보복하는 길은 역시 작가의 펜을 무기 삼아 권력 그 자체를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으로 희화화함으로써 실컷 야유하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작가가 출간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판에서 한 말이다. 독재 정권의 검열을 피하기 어려웠던 시절, 작가는 풍자와 해학을 매개로 문제의식을 정치하게 녹여냈다. “이 소설을 씀으로써 나는 비로소 실의와 자괴지심을 딛고 재기할 수 있었다”는 말에는 작가로서의 자존감, 작가로서의 책무 등이 담겨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완장을 두른 뒤 급격히 변모해버린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결국 ‘완장’은 권력을 희화화하는 상징물이자 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인간의 본성을 대변한다.
황종연 평론가는 “‘완장’은 현대 한국의 속어 혁명을 통해 성장한 장편소설 중 가장 희극적인 동시에 가장 진지한 인간 사회의 우화”라고 평한다.
한편 작가 윤흥길은 지난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로 등단했으며 반세기가 넘는 지금까지 창작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현대문학·1만6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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