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이언주 지음
우리나라 사람을 ‘판다 사랑’에 빠지도록 한 이가 있다. 베테랑 사육사인 강철원. 베테랑 사육사인 그도 동물과 소통하는 일은 버겁고 어렵다. 그는 판다 짝짓기에 성공해서 할아버지가 되는 게 소원이었다. 물론 그 꿈을 이뤘다.
2016년 암수 판다 한 쌍이 한국에 들여졌다. 관록이 있는 강철원 사육사에게도 사육과 번식은 어려운 과제였다. 그는 한국에 데려오기 전 중국으로 건너가 판다와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와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에서 태어난 판다 푸바오는 만 4년이 되면 중국으로 가야한다. 짝을 만나기 위해서다. 강 사육사 또한 판다 푸바오와 이별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푸바오와 대화할 수 있다면 그는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너는 영원한 나의 아기 판다야, 어떤 상황이 오든 난 늘 너의 편이고 너를 생각하고 있어.”
위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던 사육사 강철원에 대한 내용 가운데 일부다. 대표 토크쇼로 확고하게 입지를 다진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이언주 작가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가는 그동안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꽃보다 할배’ 등 유수의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해왔다. 그는 지난 2018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첫 방 이후 수백 명의 출연자를 만나왔다. 물론 카메라 밖에서다. 스쳐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도 소중하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책으로 묶어냈다.
한마디로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은 방송작가 이언주의 ‘사람 여행’ 에세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에서 보듯 책에는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감성이 녹아 있다.
세계 3대 음악 콩쿠르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에 대한 글도 만날 수 있다. 조성진에게는 피아노가 쉬워 보였다. 어느 분야나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이들은 모든 게 술술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성진은 피나는 인고를 감내하는 연습 천재였다. 조성진의 말이다.
“제가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정말 만족할 만한 연주는 열 번? 몇 번 안 됐을 거예요. 그 횟수를 늘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조성진은 1년에 100회 정도 연주를 위해 세계를 돌아다닌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주를 했는데, 만족할 연주는 고작 10회가 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연습벌레’, ‘치열함’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작가는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으로 채워갈까’라고 반문한다.
소설가 정세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유퀴즈’에서 소개한 정세랑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창조자였다. 그만큼 그의 소설 세계는 ‘거대 지렁이’, ‘외계인과의 사랑’ 등 기발한 상상을 자랑한다. 이색적인 소재는 일상과 맞닿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새로 나온 과자를 먹고, 가보지 않은 길로 산책을 하고, 아주 낯선 분야의 책을 읽는” 등 열린 마음이 창작으로 연계됐다.
대학 졸업을 앞뒀던 이지선은 스물 셋에 끔직한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지금은 작가이자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됐지만 사고 당시 그는 내일을 꿈꿀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지선은 “어느 날부터 ‘사고를 당했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중략) 그래서 스스로 그냥 말을 바꾼 거예요. ‘사고를 만났다’로.”
이지선은 당장의 삶이 암울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우리 인생은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대감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이밖에 책에는 화학자 곽재식, 모델 최소라, 경주 최부자댁 최창호, 이삭토스트 대표 김하경, 200명 아이들의 엄마 임천숙, 왕진 의사 양창모 등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채·1만8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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