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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루오 ‘미제레레’ 해설, 정웅모 신부 “우리를 돌아보고 질문하게 하는 작품”

by 광주일보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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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미술관 ‘조르주 루오’전
“루오는 인간의 소중함 그린 작가
가난하고 소외된 많은 사람들
따뜻한 연민으로 바라봐”
“숭고한 인간 내면 다룬 작품
마주하며 자신과 대화하길”

조르주 루오전에 전시된 ‘미제레레’ 해설을 쓴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남도립미술관 ‘미제레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2023년 1월 29일까지)에는 퐁피두센터 등에서 대여한 회화,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모두 200여점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58점의 판화 연작으로 구성된 ‘미제레레’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작품이다.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의 라틴어 첫 머리에서 제목을 따온 판화집 ‘미제레레’는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보여주고, 종교화를 당시의 시대상에 곁들여 루오만의 시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작에는 짧은 해설이 함께 붙어 있어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미제레레’ 작품을 해설한 정웅모 에밀리오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성미술담당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작품을 둘러봤다. 미술사와 박물관학을 공부한 정 신부는 형 정양모 신부와 함께 지난 2016년 ‘미제레레’(기쁜 소식)’를 펴내기도 했다.

전시 전부터 작품 관련 자문을 하고, 소장하고 있는 루오 관련 작품집 등도 전시에 내놓은 정 신부는 “전시 공간별로 차별화를 두고 특색있게 구성해 루오의 작품 경향별로 집중할 수 있고, 한 점 한 점이 돋보이도록 배치 한 점도 돋보인다”고 말했다.

‘듀오, 두형제’<퐁피두 미술관 소장>
 

이번 전시는 여느 블록버스트 전시와 달리 차분한 관람 태도가 눈에 띈다. 오랜 시간 머물며 작품을 응시하는 이들이 많다.

“루오의 작품은 인기 많은 인상주의 작품처럼 한번 보고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인간의 외적인 모습 뿐 아니라 내면적인 모습까지 함께 담아낸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면서 작품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감상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요. 인간 실존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깁니다.”

정 신부는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루오에 관심을 가졌다. 아무래도 루오가 종교화를 많이 그린 작가이다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갔지만 루오에게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1987년 사제서품을 받은 정 신부는 홍익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영국 뉴캐슬대에서 박물관학을 공부했다.

“그의 작품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입니다. 동시대 화파에 속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은, 유파나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혼자의 길을 걸었던 분이죠. 일반 화가들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치중했다면 루오는 그 너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 그 너머의 본질적인 것들이죠.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언제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 들어가면 사물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다 차차 어둠에 익숙해지면 조금씩 형태가 드러나는 것처럼, 루오의 작품도 그렇습니다.”

‘미제레레 동판 <조르주 루오 재단 소장>
 

20세기 가장 중요한 판화 작품으로 꼽히는 ‘미제레레’에 많은 감동을 받았던 형제 신부는 그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 책을 펴냈다.

“평생 성서학자로 깊게 공부하신 형님은 성서적 내용을 풀어내고 저는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덧붙인 책입니다. 58점의 작품은 다 하나 하나 독립적이면서 또 연결돼 있습니다. 루오 스스로가 ‘화제(畵題)’ 이외에는 별다는 설명을 쓰지 않았어요. 전시장에 두 줄씩 설명을 써놓았는데 해설을 꼭 따라가실 필요는 없어요. 루오의 작품 하나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고,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면 작품이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십시요. 루오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간의 여러 상황에 대한 신의 이야기입니다.”

정 신부는 책 표지에 ‘누군들 분장하지 않으랴’을 실었고 이 작품은 관람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8번째 작품 ‘누군들 분장하지 않으랴’는 광대의 얼굴을 한 루오의 자화상이자 우리 개개인의 자화상입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삶의 무대에서 살아내기 위해 분장을 하고, 때론 진실을 가리고 살아갑니다. 속마음을 다 내놓고 살 수 없는 인간의 고달픈 삶의 모습이죠.”

‘어머니들은 전쟁을 싫어한다’, 전선으로 떠나는 부자의 모습을 담은 ‘아버지, 작별인사 드립니다’ 등의 작품을 보며 지금 우리는 자식을 전장으로 보내야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머니들의 통곡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전쟁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립니다. 인간의 생명도 별 가치 없이 사라져버리죠. ‘미제레레’는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루오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한다는 마음을 담아 강렬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물질적인 발전은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면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크라이나, 미안마 등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살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남북의 긴장과 갈등은 여전하고 지역, 계층간 불화도 만연해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시대를 하루 하루 살아내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루오의 작품은 여전히 호소력을 갖습니다.”

정 신부는 루오의 그림에서 모든 인간은 존귀하고 소중하다고 여겼던 그의 마음을 본다.

“루오는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주었습니다. 그들의 힘듦을 개인 탓만으로 해석하는 건 좁은 생각입니다. 오랜 기간 그의 작품 소재였던 광대와 곡예사는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찮은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 지켜야할 이들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힘든 이웃을 내치는 게 아니라 서로 품어줄 때 세상은 세상다워집니다. ‘듀오’는 서로 의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들에게서 솟아나는 희망을 봅니다.”

그는 루오의 작품이 종교를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석굴암 본존불’이 불교미술을 넘어선 것처럼 말이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예술작품은 종교를 초월합니다. 작가를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고, 국경도 초월하죠. 작품 속 예수의 모습은 인간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간을 사랑했던 이의 모습입니다.”

그는 이번 광양 전시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게 서울과 수도권 중심인 국내 상황에서 지방의 신생미술관이 이처럼 중요한 전시를 기획한다는 게 놀랍고 고맙다고 했다. 다시 유치하기 어려운 전시에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불어 이번 전시가 잘 마무리 돼 지방의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 시도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개인과 사회, 나라간의 사랑의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작품과 대화를 나누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소중함을 진지하고 깊게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예술이 주는 위안과 위로도 얻어가시구요. 작품 앞에 머무는 게 기도가 되고, 명상이 되고, 예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치유하고 성장하고 거듭나는 과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시가 마침 연말 연초까지 이어지니, 꼭 방문하셔서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사진=광양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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