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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기자

5·18 당시 ‘편의대’ 기사 보안사가 검열 삭제

by 광주일보 202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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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보안사가 검열·삭제한 언론 보도 내용들이 들어있는 계엄사후보고서.

‘계엄군이 지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편의대’ 활동을 하다 시민군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취재해 언론사에 올린 기사를 보안사가 검열해 삭제했다는 문서가 최초로 발견됐다.

편의대란 평상복 차림으로 위장해 일반 시민들처럼 행동하면서 첩보, 정보수집과 선무 선동 등의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로 이뤄진 임시특별부대를 말한다.

광주일보가 20일 송영길 국회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계엄사후보고서’에 따르면 보안사가 검열한 언론 내용 중 박종렬 동아일보 기자가 지난 1980년 5월 22일 본사에 송고한 ‘광주사태 속보’ 기사가 포함돼 있다.

해당 기사에는 ‘특전사 김희수 상사가 광주시 지원동 다리 인근에서 시민군에게 붙잡혔고 김 상사 조사를 통해 군 작전상황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기사에는 ‘김 상사를 비롯한 일부 계엄군들이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당시 사복을 입고 시위대에 매복해 사격을 했다’는 증언도 포함됐다.

치안처·법제처가 작성한 ‘계엄사후보고서(2)’에는 이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안사가 검열해 삭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5·18 연구자들은 당시 은밀히 진행됐던 계엄군의 편의대 활동 상황의 기사화를 막기 위한 보안사의 삭제 조치라는 점을 들어 편의대 활동에 대한 증거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 상사는 당시 시민군이었던 문장우씨에게 잡혔다는 게 5월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으로, 문씨는 “김 상사 등 2명을 붙잡았는데 김 상사는 군복이 아닌 시민같은 복장을 입고 짧은 머리를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군 지도부였던 이재의씨도 ‘1980년 5월 22일 오전 10시께 도청으로 이송돼 계엄군에 잡혀있는 학생들과의 교환을 조건으로 석방된 김 상사’의 존재를 기억했다.

계엄사후보고서(2)에는 1980년 5월 22일 당일에만 신문 31건(전면삭제 17건·부분삭제 14건), 통신 4건(전면2건·부분2건), 방송35건(전면22건·부분13건), 잡지 4건(전면2건·부분2건) 등의 검열을 한 것으로 적혀있다.

또 5월 18일 부터 22일까지 검열·삭제한 언론 보도도 무려 592건(신문188건, 통신120건, 방송 215건, 잡지69건 등)에 달했다. 당시 삭제된 언론 기사를 모아 분석할 경우 또다른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검열, 삭제된 기사에는 또 도청 진입의 엄격함을 엿볼 수 있는 정황도 담겨있었다. 박 기자는 당시 ‘국내 기자들에게 냉대했던 시민군들이 기자들에게 준 증표를 보여줘야 도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적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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