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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재기자

[광주일보는 5·18 당시 사진 어떻게 찍었나] ‘광주 참상’ 계엄군 피해 목숨 걸고 렌즈에 담았다

by 광주일보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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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전·나경택·김동현·조영환, 故 김한수·신복진·오태선…
“사진 내놓으라” 보안대 요원 피해 항아리, 화단에 필름 숨겨

1980년 5·18 당시 광주일보 사옥으로 쓰였던 전일빌딩은 바로 옆 옛 전남도청과 함께 5·18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광주일보 DB>

공수부대가 광주를 짓밟은 그날, 광주일보 사진기자들은 목숨을 걸고 참혹한 광주의 현실을 필름에 담았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발행된 일간신문은 광주일보의 전신인 옛 전남일보와 옛 전남매일신문 등 두개 뿐이었다. 윤길전, 나경택, 김동현, 조영환, 고(故) 김한수, 고 신복진, 고 오태선 등 사진기자가 광주 현장을 누볐다.

나경택 기자에 따르면 공수부대가 실탄을 장착한 기관총이 실린 장갑차를 끌고 금남로에 진입하고 있는 장면은 옛 광주일보 사옥인 전일빌딩 고층에서 찍혔다. 나경택 기자는 이 사진을 광주일보 사진기자로 직접 5·18 현장을 뛰었던 김한수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 추정했다.

나경택 기자는 이 사진을 고층 건물에서 난간 밖으로 카메라만 내밀어 찍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자칫 얼굴을 내밀었다간 계엄군에게 발각돼 총을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들은 계엄군을 피해 거리 곳곳을 찾아가 목격한 광주 참상을 렌즈에 담기도 했다.

또한 시신을 픽업트럭으로 운구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에 포착된 그림자 실루엣도 김한수 기자로 추정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을 보관하는 과정도 험난했다. 보안대 요원들이 신문사, 사진기자 집 할 것 없이 쳐들어와 사진 필름을 압수해 갔고, 광주일보 기자들은 필사적으로 필름을 숨겼다.

나경택 기자는 ‘사진을 내놓으라’는 보안대 요원들을 피해 집 천장과 친구 집 장독대에 필름을 숨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보안대가 쳐들어오면 다른 사진을 꺼내 인화해주며 발뺌을 했다. 신복진 기자도 신문지와 비닐로 필름을 감싸 항아리에 넣고, 화단에 묻는 등 사진 보관에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일보는 1952년 이래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촬영한 모든 사진 필름을 정치, 사회, 스포츠 등 카테고리별로 나눠 파일철에 담아 보관해 왔다. 파일철 중에는 5·18 관련 사진 또한 수십만장이 담겨 있었고, 미처 인화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이들 사진은 최근 5·18진상조사위원회가 광주일보에 사진 자료를 요청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광주일보는 수장고에 보관해 둔 사진과 필름 3600장을 조사위에 전달했고,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탰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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