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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와 필립 글래스] 파국을 암시하는 두 사람의 ‘불협화음’ 피아노 연주

by 광주일보 202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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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의 클래식, 영화를 만나다

박찬욱 감독, 헐리우드 첫 작품…니콜 키드먼 주연
아버지 장례식날 나타난 삼촌과 시작된 불편한 동거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음악계 아인슈타인’ 필립 글래스
중독성 강한 무한반복 특징…미니멀리즘의 대가

 

영화 ‘스토커’

영화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우드 첫 작품이다. ‘스토커’라는 한글 제목만 보고 Stalker(상대가 원하지 않은데도 고의적으로 쫓아다니면서 협박을 하는 사람)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니콜 키드먼이 역을 맡은 주인공 가족의 성(Stoker)이었다.

영화는 묘한 줄거리로 전개된다. 딸 인디아 스토커의 18살 생일날은 사랑하는 아빠 리처드 스토커의 장례식이다. 아빠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고 아빠의 장례식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 스토커가 등장한다. 인디아의 엄마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리처드와 금슬 좋은 부부였는데 남편이 죽자 그와 닮은 동생 찰리에게 호감을 느끼며 남편처럼 느끼고 그를 반갑게 맞아준다. 하지만 인디아는 자신에게 친절하고 뭔가 수상한 삼촌 찰리가 무섭다. 게다가 가정부와 고모 등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인디아는 혼자 있는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삼촌 찰리가 듀엣(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방식) 연주로 스킨십을 하며 접근한다. 인디아에게 삼촌은 점점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오고, 그녀는 이상한 욕망에 휩싸인다. 무섭기만 했던 찰리에게 이성으로서 오묘한 분위기를 느끼는데, 사실 찰리는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던 아빠의 둘째 동생으로 자신과 비슷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아빠는 찰리 말고도 조나단이라는 막내 동생이 있었는데, 찰리가 막내 조나단을 죽였다. 동생을 죽인 것과 그의 이상한 행동을 걱정했던 가족들은 찰리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가족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에 슬퍼하고 분노했던 찰리는 형 리처드를 죽인 것이다. 아빠 리처드는 사랑하는 딸이 동생 찰리를 닮은 것 같아 찰리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그녀의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억제시키려 했건만 어쩔 수 없이 폭력을 드러내는 인디아는 살인마저 저지르게 된다. 영화는 소녀 인디아가 삼촌 찰리도 죽이고 자신을 의심하는 보안관까지 죽이면서 끝이 난다.

영화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 비극적 구조로 진행되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삼촌 찰리와 조카 인디아가 나란히 앉아 피아노 듀엣 곡을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보통의 영화음악과는 결이 다름이 분명히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불협화음이 왠지 모르게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 작곡가는 누굴까? 음악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필립 글래스였다.

 

작곡가 필립 글래스

‘어린 왕자’를 쓴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의 말을 빌리자면 필립 글래스(1937~ )는 완벽한 작곡가다. 파격과 변신을 도모한 현대 미니멀 음악의 대가 필립 글래스는 이름만으로도 그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다. 196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미니멀 음악은 최소한의 음악을 추구하는 사조인데, 이 시기부터 슬슬 음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그 중심에 있는 필립 글래스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더해서가 아니라, 있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계속 반복해서 음악을 만든다. 이 반복은 무의미한 동일함이 아니라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변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필립 글래스는 1937년 미국의 볼티모어에서 유대인 부모님에게 태어났다. 글래스는 레코드 가게를 하고 라디오를 고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다양한 음악을 접한다. 글래스의 이런 이력이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같다. 하루키 역시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바를 운영한 영향으로 많은 음악을 접했다. 아버지의 레코드 가게 일을 도우면서 음악을 알아가고, 새로운 제품을 주문하면서 재즈나 팝 그리고 락과 현대 음악 목록을 익혔다. 그래서 그의 음악 세계는 클래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즈도 현대 순수 음악도 마지막엔 영화음악까지.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글래스의 음악이 흐른다.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악기를 배우다가 15살에 시카고 대학에 조기 입학해서 음악적인 소양을 기반으로 문학, 역사, 철학, 수학, 과학 등에 폭넓은 관심과 호기심을 보인다. 그리고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등 재즈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는다. 글래스는 누벨바그 영화(새로운 물결, 1957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새로운 풍조로 기존의 영화 방식에 반발하는 사상으로 트뤼포와 고다르가 선두주자다.), 아방가르드 댄스 등의 신문화를 접하면서 연극과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요가와 채식, 인도 여행을 통해 얻은 명상의 경험과 깨달음으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음악의 선기능을 느끼게 한다.

그의 특이한 이력의 정점은 마흔이 넘도록 뉴욕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과 배관공 택시 운전을 했다는 것인데, 위대한 작곡가스러운 판에 박히는 이력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지면서 위대해 보인다. 아무리 힘든 공연을 해도, 아무리 먼 곳까지 비행을 하고 다녀도 날마다 5시간씩 작곡하는 데 바쳤던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다. 자기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 것이다. 그의 이런 집념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의 음악은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무한 반복으로 들리겠지만 듣고 있으면 묘하게 중독된다. 21세기 현대 시기에 미국에 살고 있지만 그의 음악과 정신은 시간과 경계를 뛰어넘은 아방가르드를 표현하기도 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표현하기도 하며, 때론 음악의 명상적 기능도 중요하게 제시한다.

“수행과 음악은 서로를 위한 양분이 되는 동시에 서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개인적인 성장과 음악적인 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시간과 에너지가 어떻게 가능했느냐며 놀란 듯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로서는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라고 말했던 글래스!

 

영화 ‘스토커’에서 주인공들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 흐르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

글래스는 1976년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으로 성공을 한 이후 많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한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 영화 ‘스토커’에서도 음악을 맡았고,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디 아워스’에서도 그의 음악이 흐른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오페라 ‘사티아그라하’, 영화음악 ‘쿤둔’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독주곡 ‘미친 질주’를 좋아한다; ‘미친 질주’는 1979년 티베트의 정치적, 종교적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며 작곡을 한 곡인데 이 곡을 통해서 티베트인들을 위로하고 중국에 평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가 현대 음악가로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 단순한 탈조성이나 12음 기법이 아닌 다양한 양식과 접근법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최소한으로 축소된 음악적 재료로 단순한 진행을 펼치며 다음에 등장하는 음악의 흐름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클래식 재료뿐만 아니라 락, 아프리카 음악, 아시아 음악, 낭만주의 조성 음악의 색깔을 가미했다. 그의 작품엔 음악을 기본으로 문학과 연극과 춤과 미술이 함께 한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 이해가 어렵다면 미디어아트를 들여다봐도 좋다. 그의 작품이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얻어 탄생한 것이니 작품을 통해 시각적인 이해를 한다면 음악이 구체적으로 들리는데 도움이 된다.

시대정신에 입각한 그의 작품 세계는 영화 음악이나 극음악에서도 발현된다. 그중에서도 초기의 세 오페라와 장 콕토 감독의 영화를 음악화한 콕토 3부작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오페라 ‘오르페’, 무용극 ‘앙팡 테러블(Enfant Terrible·괴짜)’이 유명하다. 오페라만 25편 이상 쓴 그를 단순히 오페라 작곡가로만 칭하기엔 아는 것도 많고 경험한 것도 많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많은 사람이다. 그야말로 필립 글래스는 음악계의 아인슈타인이며 딜레당트이고 르네상스맨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다양성의 극한을 만들어낸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우리에게 한 수 가르쳐 주는 영혼의 지도자. 그의 인생 경험은 최대의 다양성으로 가득했지만 그 경험의 결과로 탄생한 음악은 최소한의 음악이었다. 경험은 맥시엄, 음악은 미니멈!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 앤 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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