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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의 클래식, 영화를 만나다] 기억을 잃어가는 삶 속에 흐르는 ‘슬픈 아리아’

by 광주일보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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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더’와 비제 ‘진주조개잡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는 딸 이야기
안소니 홉킨스·올리비아 콜맨 주연
프랑스 작곡가 조르쥬 비제
세 남녀 비극적 사랑 다룬 오페라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 감동

 

작곡가 조르쥬 비제

‘치매(癡?)’

글의 첫 단어로 쓰자니 상당히 괴롭고 무서운 단어다. 단어의 한문을 찾아보니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를 사용하는데, 어쩌면 차라리 어리석어지는 것뿐이라면 다행이겠다. 이 병이 무서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그 아름답고 좋은 시간이 잊히는 것,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여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참 괴롭고 슬픈 일이다.

2021년 미국 아카데미와 영국 아카데미 상을 거머쥔 영화 ‘더 파더 (The Father)’다. 1979년생인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동명 희곡 ‘아버지’(Le Pere·2012년 9월 초연)를 영화로 제작한 것으로 그의 영화 데뷔작이다. 개인적으로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영화를 즐겨 보는데, 확실히 본인이 대본을 쓴 경우는 디테일이 남다르다. 원작은 한국에서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이미 2016년에 국립극단에서 박근형 주연으로 상연된 적이 있다. 

영화는 주인공인 안소니의 시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치매에 걸린 안소니 입장에서 보이는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실제 상황과 다르다. 영국의 부유한 가정집에서 아리아를 듣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의 등장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80대 노인인 안소니(영화 속 이름도 안소니라니!)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치매 노인이고 간병인을 거부하면서도 혼자서는 깜박깜박하는 일이 많다. 

큰딸 앤(올리비아 콜맨)이 집에 들르자, 그는 딸에게 간병인을 욕하면서 물건을 훔친 것 같다고 나쁜 여자라고 한다. 앤은 아버지의 착각이라면서 차분히 설명하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고, 앤이 일 때문에 파리로 가야 한다고 하자 프랑스 사람들을 흉보며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한다. 실제로 환자 가족 입장에선 환자의 변덕과 불평, 불만을 제때에 들어주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억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니. 


딸이 결혼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 딸과 같이 사는 남자가 남편인지 아닌지, 제임스인지 폴인지, 지금 자신이 있는 집이 자기 집인지 딸의 집인지. 시계를 손목에 찼는지 아니면 도난당했는지, 이미 교통사고로 죽은 둘째 딸 루시를 찾으면서 이런저런 혼란한 상황과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 모든 상황은 안소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관객 입장에선 등장인물이 매번 바뀌고, 그의 변덕이 복잡하기만 하다. 안소니는 가끔씩 유머 있는 말도 하고 대화의 맥락을 잡고 정리도 잘하지만, 사실은 모든 게 혼동이고 착각이다. 이미 몇 주 전에 큰딸 앤은 파리로 떠났고 지금 안소니는 병원에 있다. 별 일 없냐고 묻는 남자 간호사의 말에 별일 없다고 답하지만 그는 현재 별일이 있는 거다. 마음이 아렸지만 눈물 없이 덤덤히 보고 있던 나는 영화 마지막 7분 동안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를 보며 입을 틀어막고 울먹이고 말았다. 안소니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어린아이처럼 운다. “나는 뭐지?” “정확하게 내가 누구야?”라고 물으며 안소니는 결국 요양병원의 간호사 품에서 펑펑 운다. 

자신의 낙엽이 다 떨어진 것 같다고 우는 그의 마음.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간호사는 그를 위로하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인 채 막을 내린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봤을 영화고, 한편으로는 직시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제발 안 생겼으면 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났을 때 모든 인간은 나약해지고 무력해진다. 대부분의 치매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남겨진 자의 입장에서 조명을 했다면 이 영화는 치매에 걸린 당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 더욱 슬펐다. 세월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의 오페라 ‘킹 아서’의 아리아 ‘너는 무슨 힘으로(What power art thou?)’가 흐른다. 딸이 아버지에게 급히 걸어가는 장면에 배경으로 깔리는 이 아리아는 아버지의 헤드셋에서 흐르는 아리아다. 아버지는 오페라를 즐겨 듣는다. 오페라를 즐겨 듣는 남자. 어쩌면 안소니도 젊을 적엔 인기 드라마 ‘빈센조’ 속 변호사 같은 멋지고 잘생긴 남성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젠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가 돼서 무섭다며 울고 있다. 

안소니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젖히면서 밖을 내다본다. 햇살 좋은 날 밖에서 뛰어노는 젊은 남자를 보면서는 미소를 짓는다. 늙은 그는 안에 갇혀있지만 젊은 남자는 밖에 있다. 그의 젊음은, 그의 기억은, 그의 시간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올리비아 콜맨은 영화 ‘더 파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는 내용이 무거워서인지 음악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안소니가 즐겨 듣던 오페라 선율들은 장면과 함께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은 안소니가 헤드셋으로 듣는 장면, 중간 부분 딸이 요양 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딸이 아버지를 두고 나오는 장면에서 흐른다. 

이 음악은 37살의 나이에 요절한 프랑스 작곡가 조르쥬 비제의 작품이다. 비제는 오페라 ‘카르멘’과 모음곡 ‘아를의 여인’으로 유명한데, 이미 25살에 이토록 슬픈 선율을 탄생시켰다. 비제의 오페라 중 비교적 초기 작품인 ‘진주조개잡이’는 한 여인을 두고 두 남자가 사랑을 하는 전형적인 사랑이야기다. 전체 3막 구성으로, 고대 인도의 남부 실론 섬을 배경으로 하는 이국적인 설정이다. 천민 출신인 레일라(소프라노)는 신비로운 미모와 뛰어난 노래 솜씨 덕분에 진주조개잡이를 하는 어부들을 위해 기도하는 여사제가 된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도 사랑을 하지 않으며 정결한 여사제가 될 것을 약속한 몸이었다.

두 남자 나디르와 주르가는 서로 친구 사이다. 하지만 둘은 같은 여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레일라는 사제가 됐고, 나중에는 사제직을 버리고 나디르와 다시 연인 사이가 된다. 연적이 된 두 남자는 우정에 금이 간다. 두 사람을 죽이려 했던 주르가는 레일라가 언젠가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소녀임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위해 그리고 우정을 위해 둘의 사랑을 보호해 준다. 마을에 불을 지르고 어수선한 상황을 틈 타 두 사람을 도망시킨 후, 자신이 대신 벌을 받으며 오페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모두 사랑 때문이다.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는 전체 연주 시간 100분 내외로 오페라 치고는 짧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고난도의 아리아가 많아서 전막이 공연되는 횟수는 상당히 드물다. 그중에서도 특히 1막에서 주인공인 나디르가 부르는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는 예전 연인이었던 레일라가 여사제가 되어 어부들을 위해 기도하러 왔을 때, 진주조개잡이 어부 나디르가 그녀의 음성을 듣고서는 귀에 익은 음성이라며 부르는 노래다. 나디르는 목소리만 듣고도 여사제가 사랑했던 여인 레일라임을 알아차린다. 그녀의 목소리를 어찌 잊겠는가.

느리고 고즈넉한 느낌으로 반주가 시작되면 테너의 가녀리고 처량한 목소리가 얹어진다. 보통 테너는 오페라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아 극적이고 화려한 선율의 노래를 부르는데 반해, 이 아리아는 여자가 부르는 것처럼 감미롭고 절절하다. 오히려 여자의 음성보다 훨씬 슬프게 들린다. 

3분 정도의 짧은 곡이지만 오페라 아리아 같기도 하고 샹송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의 테너 알랭 방조의 음성과 전설적인 샹송 가수 티노 로시의 음성을 즐겨 듣는다. 더불어 2015년 한국에서 초연된 국립오페라단의 멕시코 출신 테너 헤수스 레온의 열창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젠 알겠다. 서로 사랑하며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누군가와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를. 

시간이 없다. 내 곁의 사람들을 더욱더 사랑해야겠다.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 앤 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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