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지역민 반응
“죄인처럼 숨어 지낸 통한의 세월…이젠 진실 제대로 밝혀야”
유족·시민단체들 환영 속 재단 설립 등 누락된 부분 아쉬움
실무위 직권 조사 권한 부여하고 배·보상 담은 법 개정 필요
“73년 동안 통한의 세월을 살았는데, 오늘에서야 한을 풀게돼 가슴이 너무 벅찹니다.”
29일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담은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여순사건 피해자와 지역시민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특별법에서 누락된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서 추후 개정안을 통해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3년 만의 한, 드디어 풀었네”=특별법 통과 소식을 접한 유족들도 이제라도 국회를 통과한 특볍법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세 살 때 여순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순천지역 유족인 박병찬씨는 “1948년 동짓달 스무날 순천 외서면 금성마을회관 앞에서 사람들을 두들켜 패면서 ‘빨갱이가 누구냐’며 손가락질로 지목하라는 군인들의 폭력에 못이겨 내 아버지를 포함한 4명이 지목돼 희생됐다”면서 “당시 30살된 어머니 홀로 고생해서 누님 2명과 나를 이렇게 키워내고 지난 2016년 9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었으면 너무나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또 “유족들은 지난 세월동안 피해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숨어 지내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서 “특별법이 통과 됨에 따라 모든 진실이 규명되고 단 한분이라도 누락됨이 없이 명예회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순사건으로 친형·고종사촌 형·외삼촌이 희생된 여수지역 유족 황순경 씨도 특별법 통과를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황씨는 “철도 공무원인 형님은 퇴근을 하다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고종사촌 형은 여수시민회관 앞 회사에서 퇴근길에 희생당했다. 순천 경찰서에 근무하던 외삼촌 역시 당시 14연대 군인들과의 교전에서 총에 맞았다”면서 “73년동안 3명의 가족이 희생을 당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한을 풀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그는 “국가 폭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가족들 명예를 이제서야 회복하게 돼 기쁘다”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유족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 사회단체들도 환영과 아쉬움을 동시에 밝혔다.
여순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온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소장은 “특별법 통과는 여순사건 이후 73년만으로 연구소가 관련 문제를 공론화 한지 23년만의 일”이라며 “그동안 계속되는 도전에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이번 특별법 통과에 대해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아쉬운 점은 서둘러 보완해야=특별법의 미비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진상조사와 피해자 명예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고령의 유족들이 살아 생전, 여순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 회복과 위령시설 확보 및 기념행사 등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조사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실시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 4·3도 실무위원회 조사를 위주로 진행하다보니 12년간 5차례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면서 “실무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보니 신청인의 신청을 받고 정리하는 수준에 머무를수 밖에 없다”고 했다.
특별법에서 재단 설립 부분이 누락된 점에 대해서는 피해자 가족들 모두 아쉬움을 표시했다. 정부차원의 단체가 만들어져야 추후 추모행사와 각종 기념행사 들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게 이들 지적이다.
순천대 여순연구소도 보도자료를 내고 “여순 사건은 국가형성과정에서 발생한 제주 4·3,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광주 5·18의 역사적 무게에 상응하는 사건”이라며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 생존하는 고령의 유족들의 한과 눈물을 씻겨줄 배·보상을 담은 특별법 개정 등도 서둘러 추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수시는 30일 만성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특별법 통과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랠 예정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