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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타임’] 평범함에 감사하는 하루, 묵묵히 흘러가는 음악

by 광주일보 2021.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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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의 클래식, 영화를 만나다-‘어바웃 타임’과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시간 되돌리는 능력 가진 주인공, 과거여행 통해 ‘현재’ 소중함 깨달아
반복되는 멜로디 ‘거울 속의 거울’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같아
원곡은 바이올린·피아노 듀오···첼로·비올라로도 연주 다른 느낌 

리처드 커티스 감독 작 ‘어바웃 타임’의 한장면

포스터만 보고서도 느낌이 왔다. 다른 영화를 고를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웃는 모습이 순수하고 예쁜 여인이라니! 딱 봐도 애인인 듯한 두 남녀가 빗 속에서 서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외국 결혼식에 어울리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착하게 생긴 남자 팀(도널 글리슨 분)이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다. 명불허전 로맨틱 영화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를 만든 제작진과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라니 믿고 봐도 후회 없겠다 싶었다.

 

영화 초반까지만 해도 그저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여기며 웃으며 봤다. 다만 로코의 정석인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와 캔디처럼 밝은 여자의 조합이라기보다는 소심하고 연애 초짜인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보통의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로코가 주는 기분 좋음을 넘어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찔금 찔금 흘렀다. 그제서야 왜 영화의 제목이 ‘어바웃 타임’인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 작 ‘어바웃 타임’의 한장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연애 능력이라고는 평균 이하인 팀은 성인이 되는 날, 아버지(빌 나이 분)로부터 대대로 자신 집안의 남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말도 안 되는 마법 같은 이야기지만 그건 사실이었고, 팀은 이 능력을 체감하며 믿게 된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해변의 고향집에서 여동생 킷캣과 사랑 많은 부모님과 함께 유년을 보낸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 직장이 있는 런던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연히 블라인드 파티를 하는 레스토랑에서 메리를 만난다.

우물쭈물하면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팀은 자신의 비밀병기를 사용해 메리에게 다가가고, 시간을 자꾸 되돌리면서 결국 메리와 결혼에 이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팀을 보면서는 딱히 감동이 없었다. 내가 느낀 영화의 최고 장면은 결혼식날 아버지의 주례사부터다.

팀의 아버지는 말한다. 자신은 인생에서 대단히 자랑할 게 없지만 사랑하는 아들 팀의 아버지여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이 얼마나 마음 따뜻하고, 힘이 되는 부모란 말인가? 그리고 아버지의 주례사는 이어진다.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결혼은 따뜻한 사람하고 해야 한다.”

멋진 외모를 가진 능력자와의 결혼이 최고라고 여겨지는 현재의 우리에게 팀 아버지의 말은 가슴을 울린다. 영화 전반부가 팀과 메리의 사랑이 중심이었다면, 후반부는 가족의 사랑과 인생을 대하는 관점이 중심이다. 영화 마지막에 팀은 말한다.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훌륭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팀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있지만 더 이상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 여행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대신 지금 현재를 충실하고 아름답게 살겠다고 결정한다. 단순한 이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잘 안 되는 명제다. 원래 단순한 것들을 지키기가 제일 어렵지 않던가! 영화가 던지는 진리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을 한 곡 소개한다.

에스토니아 출신 클래식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1935~ )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다. 영화 속에서는 팀의 딸 포지가 태어나는 장면부터 조용히 흐르는데, 지금이야 패르트의 음악이 널리 알려졌지만 2013년 영화 개봉 당시만 해도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들도 잘 모르는 곡이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에스토니아는 유럽이지만 우리에게 낯선 국가다. 북유럽이라고 하면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만 알고 있었는데, 지도를 보니 말로만 듣던 발트해 3국이 바로 그 인근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까지 배 타고 2시간 정도로 가깝다. 에스토니아는 원래 에스토니아인들의 땅이었지만, 1227년 독일이 정복하면서 기독교화됐고, 이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오랫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되찾았는데, 이런 이유로 나라의 느낌이 러시아 같기도 하고 유럽 같기도 한 복합적인 정서다.

아르보 패르트는 굉장히 수도자처럼 생겼다.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도 볼 수 있는데, 바로 종이다. 굉장히 신령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는 이 종소리를 모티브로 많은 영감을 얻어 작곡한다. ‘거울 속의 거울’은 1978년에 작곡한 작품집 ‘알리나’에 수록되어 있는 곡인데, 틴틴나불리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틴틴나불리’란 종소리라는 뜻의 라틴어 복수인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우리나라 절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듣는 듯하다. 경이로운 느낌이다.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한 분위기는 교회의 종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서양 사람이니 당연히 교회의 종이겠지만 왠지 나에겐 산사의 풍경소리 같았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특히 음악은 절반은 창작자의 몫이고 절반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각각의 느낌으로 들어보시길.

현대 음악은 무조건 복잡한 리듬과 불협화음이 가득한 시끄러운 음악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예상과는 정반대로 단순한 몇 음을 가지고 굉장히 매력적인 음악을 표현했다. 점점 빨라지고 강렬해지는 현대사회 속에서 이런 음악을 들으면 천상계를 접한 기분이다.

피아노가 조용히 시작되고 1분 정도 지나서야 드디어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가 등장한다. 마치 인간이 열 달의 기다림 끝에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은 계속 흘러가듯 하면서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으며, 그 쉼표 안에서도 마지막 음표가 연주될 때까지 계속 멈추지 않는다. 이것 또한 우리의 삶이 죽는 날까지 여전히 흘러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감독은 이 음악이 그저 흘러가는 느낌이어서 좋았다고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 역시 피아니스트로서 이 점을 강하게 동감한다. 흘러가는 것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면 불협화음이 생긴다.

원래 이 곡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작곡되었는데, 요즘은 첼로나 비올라로도 많이 연주된다. 음반에서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다른 음색의 악기로 연주되니 각각의 차이를 느끼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잉글랜드 서남부의 콘윌이라는 해변가다. 감독이 꼭 해변가의 집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데, 그의 이런 시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팀의 집엔 그림도 많이 걸려 있고, 창가엔 갈색의 마호가니 피아노가 있으며 그 위로 책도 많이 쌓여 있다. 그림과 책과 음악과 바다와 그것 들을 함께 즐길 따뜻한 가족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 상당히 부러운 집이다. 곁에 있는 사람과의 사랑과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과 평범한 일상은 축복이다. 언젠가 이런 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듣는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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