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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선율에 흐르는 베스 잃은 가족의 슬픔

by 광주일보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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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의 클래식 영화를 만나다-(2) 영화 ‘작은 아씨들’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루이자 메이 올컷 자전적 소설···남북전쟁 배경 네 자매 성장기
영호로만 7번이나 만들어져···월광과 함께 가장 사랑 받는 곡 비통→평온 위로의 멜로디

 

'작은 아씨들' 영화의 한 장면

어릴 적 엄마가 사 주신 50권짜리 세계명작 전집은 내 책장의 한 칸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와 닿은 책 ‘작은 아씨들’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고, 다음엔 만화로 어른이 돼서는 영화로 반복하며 봤다. 너무 신기한 건 다 아는 내용인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내 마음속에 저장된다는 것이었다. 마치(March) 집안의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 가 숙녀로 그리고 성인으로 커가는 모습에 맞춰 나도 성장했고, 지금까지도 이 소설이 주는 신비한 마력에 푹 빠져 있다.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1868년 미국의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쓴 자전적 소설로 1868년과 1869년에 걸쳐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4명의 자매들 중 둘째인 조가 작가의 모습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각색되어 지금까지 7회에 걸쳐 제작됐다. 뻔한 이야기지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매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베토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남북 전쟁을 겪고 있는 19세기 미국이고 청교도 사상이 종교적인 배경이다. 네 자매는 미국 내전이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가 전쟁에 참가하게 돼 아버지 없이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다. 언제나 사랑 많고 현명한 어머니(로라 던)를 중심으로 네 자매들은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잘 헤쳐나간다. 원제인 ‘리틀 위민’(Little Women)은 아버지가 네 자매들을 부를 때 사용한 말로, ‘우아한 아가씨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엄마인 마거릿 마치의 말에서도 자매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영화 ‘레이디 버드’를 만들었던 그레타 거윅의 연출과 시얼샤 로넌이 ‘조 마치’를 연기했던 영화는 전작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물했다. 영화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어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느냐에 따라 다른 시선을 조명한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오가며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로바로 비교하면서 보여주니 시간적으로 계속 흘러가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신선했다. 깐깐한 성격의 고모로 미국의 대배우 메릴 스트립이 등장했고 이웃집 귀족 도련님 로리 역에는 티모시 샬라메가 호연했다. 

네 자매는 모두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꿈을 위해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며 언제나 실현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 첫째 ‘메그’는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결혼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둘째 ‘조’는 결혼보다는 작가가 되는 삶을 선택했다가 늦게 결혼한다. 셋째 ‘베스’는 피아노를 좋아하니 음악가의 꿈을 꿨고, 막내 ‘에이미’는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 화가의 길을 걷는다. 

여전히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여성들의 사랑과 직면해야할 사회적 현실을 다룬 이야기라 소설이 탄생한 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음악은 미국의 유명 음악 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팔라가 맡았다. 영화만큼이나 영화의 배경음악 OST도 유명하고 삽입된 클래식 음악도 내용을 기억하기에 큰 나침반이 된다. 가히 고전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이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고전의 결을 같이 하며 흐른다. 때론 영화의 이야기를 대신해서 때론 선율이 주는 분위기를 위해 음악은 영화에 얹어 있다.

언니와 무도회장에 왔지만 치마를 태워먹는 바람에 춤출 수 없던 조를 위해 로리는 건물 밖으로 나가 춤을 청한다. 그야말로 자기들 식의 막춤을 추는 그 둘의 신나는 모습이 렌즈에 담길 때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칸’ 3악장이 흐른다. 왈츠 선율의 음악이 이렇게 신나는 음악인 줄 그들의 춤을 보고서야 느껴졌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셋째 베스가 옆집 로렌스 할아버지네 집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대부분 슈만의 작품들이다. 슈만의 초기 작품인 ‘나비, Op.2’와 우리에게 알려진 슈만의 가장 유명한 작품 ‘어린이 정경, Op.15’이 흐른다. 슈만이 사랑하는 연인 클라라를 어린아이처럼 여기며 작곡한 ‘어린이 정경’은 13곡의 모음곡집인데 일곱 번째 곡 트로이메라이가 가장 유명하다. ‘트로이메라이’는 ‘작은 꿈’을 의미한다.

영화 막바지 무렵, 조의 가족을 방문한 프리드리히(뉴욕에서 조가 만났던 독일인 교수, 후에 조와 결혼한다.)는 죽은 베스를 추모하는 의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2악장을 연주한다. 8번 소나타 ‘비창’과, 1801년 작곡된 14번 소나타 ‘월광’은 베토벤의 시그니처다.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 두 곡은 모두 베토벤의 서른 즈음에 작곡됐다. 

세상과 이별을 하겠다고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1802년)를 쓰기 얼마 전 완성된 것이다. 이 소나타의 원제목은 ‘그랑 소나타 파테티크(비창스런 대 소나타, Grande sonate pathetique)’이다. 파테띠끄(Pathetique)란 ‘애처로운’ 혹은 ‘감동시키는’이란 의미의 프랑스어 형용사로, 비창(悲愴)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픈 감정이다. 

엄중하고 무겁게 시작되는 1악장은 비극을 알리는 듯 침통하고 무겁다. 하지만 무거움이 전부는 아니다. 천천히 시작한 1악장의 서주는 중단 없이 알레그로 몰토(매우 빠르게)로 휘몰아치듯 이어서 연주된다. 비통과 억울함이 가득 묻은 슬픈 멜로디가 1악장을 장식하고 2악장의 평온한 멜로디가 흐른다. 2악장은 루이스 터커의 노래 ‘미드나잇 블루 (Midnight blue)’로도 불려서 익숙한 음악이다. 

루이스는 영국 명문 음대인 길드홀 음악원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인재인데, 이 곡을 불러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졌다. 비창 소나타는 고즈넉하게 혼자 있는 미드나잇에 들으면 포근하게 듣는 이를 다독인다. 베토벤에게도 너무 일찍 죽었던 베스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유일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그의 음악이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이에게도 소리를 듣지 않고 상상만으로 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음악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 음들이 내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빈 도화지를 보지만 자신이 그리려는 장면이 보이는 화가의 그것과 비슷하다. 베토벤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베토벤이 원하는 음악적 표현에 꺼내 쓸 온 우주의 음들이 떠돌고 있었다.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 앤 소울 대표

 


추천음반

 

에밀 길레스·엘리 나이 피아노 음반과 메조 소프라노 루이스 터커 ‘미드나잇 블루’

피아니스트 에밀 길레스(1916~1985, 우크라이나 출생의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최고의 베토벤 소나타 레퍼런스로 인정받고 있다. 엄청난 파워와 완벽하고 세밀한 해석 능력으로는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는 길레스가 이미 녹음한 베토벤 음반이라면 다시 녹음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길레스의 베토벤은 완벽에 가깝다.

 

 

길레스가 남성의 슬픈 흐느낌이라면 엘리 나이는 절절하게 울리는 여인의 절규다. 엘리 나이(1882~1968)는 독일 최고의 여성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으며 1930~40년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류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2차 대전 중 독일 나치를 지지하면서 전쟁 후 그녀의 연주는 금지되고 만다. 베토벤 마니아 중 유독 엘리 나이의 음반만 챙겨 듣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녀의 음색은 독특하고 특별하다.

영국의 메조소프라노 가수 ‘루이스 터커’는 1982년에 발표한 음반 ‘Midnight Blue’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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