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 암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이효석 작, ‘낙엽을 태우면서’ 중>
가을이 깊어지면서 가로수 나뭇잎들이 바람과 함께 흩날린다. 가을날 잎들이 바람에 쓸리듯이 내 마음도 정처 없이 나부낀다. 이런 계절이면 학창시절 읽었던 교과서 속 시와 수필에서 떠오른 몇 구절로 문학소녀같은 감성에 젖어본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한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상념에 잠겼던” 소설가처럼 낙엽을 모아 태우면서 연기처럼 지난날을 날려 보내고 싶은 것일까.
올 한해는 단지 마스크 한 장 걸쳤을 뿐인데 후각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아니다, 바이러스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살아내야 했기 때문에 계절이 오가면서 주는 아름다움도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이 비로소 센치멘탈한 감각을 일깨워주기 전까지는.
영국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낙엽’(1855~1856년 작)은 대학시절 교정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떨어뜨린 수북히 쌓인 낙엽을 친구들과 가득 모아 눈처럼 뿌리면서 즐거워했던 추억이 생각나게 하는 시적인 작품이다. 생명이 끝난 낙엽, 저 멀리 노을, 어렴풋한 풍경 속의 교회와 연기를 젊은 소녀들과 한 화면에 배치한 역설을 통해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라파엘전파 창립 멤버인 말레이는 라파엘로 이후의 대가 양식의 모방을 탈피하여 진실하고 꾸밈없는 자연묘사를 지향했고, 특히 문학적 주제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