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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밥집은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어 줄까

by 광주일보 2020.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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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성별·나이 불문하고 여러 목적의 친구 집단에 속해 있다. 그 중에서 최고는 역시 술친구다. 같이 술 마실 상대를 유지하는 건 나이를 먹을수록 중요하게 여겨진다. 살 날보다 산 날이 많아지고, 그래서 보내는 시간이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꺾어진다고들 흔히 표현하는데 옛날에는 서른다섯이면 그런 말을 했다. 요즘은 오십 세는 되어야 한다. 오십이 넘으면 그러니까, 시간이 더 빨리 간다.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런 상황이니 술친구와 어디 가서 무얼 먹느냐도 그만큼 소중하다. 돈은 없지, 입맛은 오랜 경험(?)으로 높아졌지, 아무 데나 갈 수는 없다.

흥미로운 건 까다로움이 대체로 가격과 반비례하더라는 것이다. 호텔 밥은 그래서 제일 맛이 없게 여겨진다. 딱 원가와 서비스와 심지어 토지 비용까지 계산해 놓은 밥이라는 느낌이 온다. 버선발로 반겨 달라는 건 아니지만, 마치 매뉴얼을 보면서 손님 응대하는 느낌을 받는다. 요리도 그렇다. 재료비와 내 주머니 사정을 어찌 그렇게 잘도 일치시키는지. 호텔은 어쩌면 경영이라는 계산과 이익의 원칙 아래 움직이는 공간이니 그러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걸 알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밥 먹으러 가는 일이 쉽지 않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사람 정이 풀풀 묻어나는 그런 집에들 가고 싶다. 그렇다고 시쳇말로 ‘난 막 퍼줘요, 원가 몰라요’ 이런 집도 너무 지나쳐서 별로이다. 못 남겨서 이른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흑자 부도 날 것 같은 집도 싫다. 남길 것 남기되 그런 타산 안 보이는 집이 좋다는 거다. 거참 까다롭네, 하실 텐데 사실 우리들 다수가 그런 집을 사랑하지 않는가.

남도는 예의 그 술친구들과 자주 찾게 된다. 주로 밥집을 많이 찾는다. 대폿집도 기막히고 좋지만, 우선은 밥집이다. 밥집이란 백반집 같은 곳들이다. 여수나 순천·광주·목포 어디든 있는, 그런 수더분한 백반집들. 하다못해 대학가 앞에도 있는 밥집들. 그곳은 당최 원가가 무엇인지 학습할 수 없는 곳이다. 한 상 차려 받으면 계산이 안 선다. 이렇게 내주고 칠천 원, 팔천 원 받아도 되는 것인가 싶다.

지역은, 농수축산물이 나는 곳이니 아무래도 도시보다 재료비가 쌀 것이다. 사람 얻어서 쓰는 일도 덜 박할 것 같다.(물론 아닐 수 있다) 임대료도 대체로 싸거나, 주인이 자가에서 장사하는 경우도 많다. 하기야 자가여서 월세 안 내니 음식값이 싸다는 건 어폐가 있다. 임대 내주면 돈을 받을 수 있으니 그걸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참 싸다.

신선식품은 멀리 이동하면 값이 떨어지니 지역이 싸긴 싸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 상 받는 것이 마뜩하지만은 않다. 우선은 주인이 유행어로 ‘자신을 갈아 넣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쟁 심하지, 평생 식당노동 말고 다른 걸 생각해 보지 않았지, 그러니 휴일도 심지어 쉬는 일이 별로 없다. 이런 밥집에 가서 보라.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이 없는 휴식 시간 비슷한 때에도 쉬는 법을 모른다. 연신 양손으로 뭔가 일을 한다. 쪽파를 다듬고, 고구마 줄기를 벗긴다. 마늘을 찧고, 호박을 썬다. 해안가 식당이라면 가게 밖 건조대에 말리고 있는 생선을 뒤집는다. 사서 쓰면 비싸지고, 밥값이 오르니 이른바 몸으로 때운다. 그게 낮은 밥값을 지탱한다.

그러니, 그런 자리에서 뻔히 다 아는 처지인 내가 밥술이 쉬이 들어가겠는가. 아닌 말이지만, 그런 밥집에서 괜히 분해지고 짠해져서 두 병 마실 술을 네 병 마시고 일찌감치 취해 버린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말을 어디 가서 용감히 하지도 못한다. 시방, 당신이 도시에서 와서 우리 동네 밥값 올리라는 것이여 뭐여. 이런 말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욕먹더라도 말하고 싶다. 밥값이 너무 싸면 그 가게는 못 버틴다. 밥집 다니면서 주인들에게 좀 물어보시라. 언제까지 이 일 하시겠느냐고.

“아이고, 무릎이, 심장이 안 좋아서 이제 못해. 영감이랑 달리 할 것 없으니 붙들고는 있지만. (물려주시면 되잖소?) 떽. 내 고생을 새끼들한테까지 넘기라고? 하기야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이고. 우리 대에서 끝내야지. 이젠 끝이여. 나까지 하고 끝이여.”

이런 대꾸들, 듣기 딱 좋다. 그럴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 가서 밥다운 밥을 먹을 것인가. 반찬만 가지고도 술을 세 병, 네 병 마실 수 있는 이 멋진 상을 어디 가서 받아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미안해서 뭐라도 값나가는 안주를 시킬라치면 맨상에 술 마시는 동네 어른들 불편하실까 염려되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세상, 우리가 살고 있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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