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빛깔 ‘쪽빛’으로 세계를 물들이고 싶다”
‘농부의 아들’로서 쪽 염색 소명감
‘천년의 빛깔’ 살리려 47년 한 길
원료와 공기·햇빛 만나 쪽빛 토해내
항균·항염·방충 효과…활용도 무한
“푸른색은 쪽에서 취하였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取之於藍 而靑於藍) 쪽풀에서 나온 쪽색(Indigo)은 ‘천년의 빛깔’이다. 영산강변 쪽마을에서 태어난 스무 살 청년은 미술학도 시절 은사로부터 쪽씨를 건네받으며 ‘운명’처럼 쪽염색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화학염료의 보급으로 우리 땅에서 사라진 쪽염색의 전통을 살려냈다. 50년 가깝게 자연의 색을 빚어오고 있는 정관채(65) 국가무형문화재 염색장(染色匠)은 한여름 무더운 날씨에도 고생스러운 쪽염색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정관채 염색장은 일년 중 쪽풀을 수확하는 한여름에 가장 바쁘다. 4월에 파종한 쪽풀을 꽃 피기 전인 6월부터 8월사이에 서둘러 수확해야 한다. 한여름 폭염에도 염색장은 최상의 쪽빛을 내기 위해 동틀 때부터 쪽밭과 마당 옹기 사이를 오가며 구슬땀을 흘린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이하 전수교육관)은 염색장의 탯자리인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정가(正佳)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전수교육관을 찾은 날, 마당에는 짙고 옅은 쪽빛 염색을 한 후 건조를 위해 널어둔 천들이 바람결에 일렁거렸다. 염색장의 손에서 빚어진 쪽빛은 자연의 빛깔을 닮았다. 하늘빛처럼 푸르고, 바다빛처럼 깊었다.
-영산강변 마을인 가흥리에서 예로부터 쪽염색이 성행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영산강은 담양 용추골에서 시작해서 목포 앞바다로 가잖아요. 우리 어렸을 때는 담양 용추골 큰애기가 소변을 보면 물찐(홍수 나는) 데가 여기라고 할 정도였어요. 쪽이라는 식물은 장마가 지면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나요. 여뀌과 식물 특징이에요. 홍수가 나도 살아있는 것은 쪽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넓은 나주평야에 주민들이 살아가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쪽을 심었어요.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20~30년 동안 쪽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 이유는 화학섬유, 화학 합성염료가 등장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쪽염색이) 다 잊혀져 갔죠.”
-목포대 미술학과 1학년에 재학하던 1978년, 은사 박복규 교수(서양화가)께서 언론인이자 민속학 연구자인 예용해(1929~1995) 선생에게 얻은 쪽씨를 선생님께 건넸습니다. 탯자리부터 스승과의 인연을 보면 사라져버린 쪽물염색의 전통을 잇는 국가무형문화재 염색장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용해 선생님과 박복규 교수님을 통해서 저한테 쪽씨가 온 이유가 과거에 홍수 대체작물로 쪽을 심었던 이곳에서 빨리 재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거죠. 그러한 인연과 운명 속에서 쪽 재배와 쪽 염색이 다시 시작이 된 것이죠. 벌써 47년이 됐습니다.”
-1970년대 후반이면 쪽염색 전통이 끊겨버린 때라 처음 시작하실 때 어려움이 많으셨을 듯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쪽염색 재현에 소명감(召命感)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4대째 살고 있으면서 이 색을 재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쪽염색이)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거예요. 그렇지만 ‘농부의 아들이고 미술을 전공한 내가 안하면 할 사람이 없겠구나’, ‘이제부터 쪽장이의 길을 가야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은 있었죠. ‘저 녀석은 없는 돈에 촌에서 대학교를 보냈는데 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그 힘든 일을 뭣 하러 하는가 모르겠다’ 하면서 다 만류를 했었어요. 1990년대 중반이 되니까 세계적으로 에코(Eco)산업 흐름으로 변하고, 천연 염색이라는 화두(話頭)가 튀어 올랐습니다. 2001년에 마흔네 살 어린 나이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염색장 보유자로 지정 되었습니다. 태어난 것도, 운명적인 쪽씨를 만난 것도 내가 안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소명의식이 없어서는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1년에 한 세 번쯤은 거의 정신줄을 놔버릴 정도로 힘들 때가 있어요.”
쪽염색은 무명과 삼베, 모시, 비단 등 자연섬유에 잘 든다. 이를 활용하면 새로운 제품의 개발 범위는 무한하다. 과거에 함진아비가 혼서지(婚書紙)와 예물을 넣고 짊어지는 함이나 면역력이 약한 갓난아기를 위한 배냇저고리 등 의류, 침구류에도 쪽염색이 쓰이는 까닭은 항균·항염·방충 효과 때문이다. 전수교육관에서 쪽염색 병풍, 금니사경(金泥寫經), 청매(靑梅) 윤회매(輪廻梅), 배냇저고리 등 다양한 제품들을 볼 수 있었다. 작품마다 염색장의 땀방울과 소명의식이 배어있다.
정 염색장은 화학염료가 아닌 천연 쪽염색을 한 청바지를 만들어서 명품화시키는 꿈을 품고 있다. 세계적인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에서 주최한 ‘블루진 페스티벌’에 출품해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청바지의 섬유는 겉과 안이 다른 댓님 천이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면서 천이 직조되기 때문에 안은 하얗고, 겉은 청색이다. 청바지를 만들기 위해 독성강한 화학염료를 사용하면 환경오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면 천연염색을 하는 쪽청바지는 건강뿐만 아니라 이러한 환경문제를 모두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정 염색장은 쪽염색이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 속으로 확장돼 나가기를 바란다. 지난 2022년 12월 덴마크 가구명가 ‘프리츠한센’의 창립 150주년 기념전에서는 협업 작품을 선보였다. 정 염색장이 만든 쪽빛 무명천으로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걸작 ‘에그(Egg) 체어’를 감싸며 ‘쪽빛 의자’로 새롭게 재해석됐다
“쪽염색과 같은 국가무형문화재가 지금까지 이렇게 발전해 온 것도 대단한 것인데 다음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는 기반 조성이 중요해요. 국가에서 노력을 한다고 해도 우리들은 급하죠. 왜냐하면 다 고령이고 돌아가시면 그 맥이 끊길 것이 많아요. 전통이라는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농사짓는 방법도 과거 어렸을 때와 기계화된 지금은 천지차이잖아요. BTS가 세계적인 한국의 위상을 높이듯이 뭔가 우리 전통공예도 이제 그러한 계열에 서야 합니다. 한국 쪽염색 문화를 나주의 문화가 아니라 세계화, 글로벌화 이런 형태로 가기 위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것들도 이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지난 2022년 11월, 넷플릭스 ‘코리아 넘버원’ 에피소드 6편에 ‘나주 쪽빛’이 소개됐다. 유재석·김연경·이광수 등 3인방이 정관채 염색장을 찾아와 쪽풀에서 푸른색 쪽염료를 얻어내는 체험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코리아 넘버원’ 프로그램이 방송된 이후 해외에서 전통 쪽염색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와 함께 정 염색장은 전수교육관 활성화사업으로 전통 쪽염색을 깊이 있게 배우려 하거나 체험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어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전통염색 시범행사를 마련한다. 지난 6월 28~30일 신청자 70여명을 대상으로 ‘2024년 국가무형유산 염색장 정관채 공개행사’를 개최했다. 쪽염색을 체험하려면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홈페이지(jungindigo.com)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되살려낸 전통문화의 전승(傳承)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 염색장은 증조 할아버지(정재숙)→ 할아버지(기현)→ 아버지(순홍)·어머니(최정님)의 뒤를 이어 4년째 전통 쪽염색의 맥(脈)을 잇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옆에서 천연염색 일손을 보탠 부인 이희자 씨는 쪽염색 과정을 모두 배워 ‘이수자’가 됐다. 천연염색과 더불어 바느질 솜씨가 좋아 염색과 바느질을 융합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둘째 아들 찬희가 전남대에서 섬유공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과학적인 이론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우수 이수자’이다. 전통 천연염색을 한 옷감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입혀 대중적인 생활용품 만드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정관채 염색장에게 쪽염색은 ‘운명’이었다. 30대 아들은 늘 쪽빛으로 물들어있는 아버지의 손톱을 보며 자랐다. 47년째 쪽염색의 한길을 걸어온 염색장에게 쪽빛의 매력은 무엇일까. 쪽빛에 매료된 부자가 대를 이어 빚어내는 ‘청출어람’의 빛깔은 푸르고 눈부시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