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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책임지지 않는 권력

by 광주일보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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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6·25의 공통점은 예견된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임란 2년 전인 선조 23년(1590년) 7월 조선이 통신사를 도요토미 히데유시(豊臣秀吉)를 만나게 한 이유는 일본이 ‘조선의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침략하겠다’는 이른바 ‘정명가도(征明假道)’가 실제 의사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은 이듬해 승려 현소(玄蘇)를 회례사(回禮使)로 조선에 보냈고, 조정은 오억령(吳億齡)에게 접대하게 했다. 현소는 “내년에 조선의 길을 빌려서 명나라를 침범할 것”이라고 재차 확언했고, 오억령은 그대로 조정에 보고했다. 그러자 조정은 오억령을 파직시켰는데, 이에 대해 ‘선조수정실록’은 “밀려난 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혼란을 일으키느냐는 문책이었다.

1949년 6월 13일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은 북한군의 전면적인 남침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38선을 뚫을 자신이 있으며 대통령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연합신문’ 6월 14일) 같은 해 8월 27일에는 “북한괴뢰집단에서 남공(南攻)을 꾀하고 있다는 것은 한갓 모략선전에 지나지 않고 역사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침범 못할 것이다…북벌에 관해서는 언제나 대통령의 명령만 있으면 하겠다”고 재차 공언했다.(연합신문 8월 31일)

오억령이 보고한 대로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은 대군을 보내 임진왜란의 개막을 알렸다. 북한군 또한 1950년 6월 25일 대거 남침으로 6·25라는 동족상잔 전쟁의 전단(戰端)을 열었다. 무려 358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란 때의 선조 조정과 6·25 때 이승만 정권의 행태는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6·25 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신성모 국무총리 서리는 무쵸(Muccio) 주한 미대사에게 “대통령과 내각이 일본으로 가서 ‘망명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무쵸 미대사는 “나는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라고 본국에 보고했다고 ‘미국 기밀 외교 문서’(FRUS: 1950년, 176쪽)는 말하고 있다. 북벌을 공언하다가 전쟁 발발 이틀 만에 망명, 그것도 일본으로 망명 의사를 타진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선조도 마찬가지로 4월 28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던 신립 장군의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요동 망명을 결심했다. 이때 유성룡이 “대가(大駕: 임금의 가마)가 우리 국토 밖으로 한 걸음만 떠나면 조선은 우리 땅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반대하자 선조는 “내부(內附: 요동에 가서 붙는 것)하는 것이 본래 나의 뜻이다”(‘선조수정실록’ 25년 5월 1일)라고 나라를 버리는 것이 자신의 소신임을 굽히지 않았다.

문제는 전란 종결 후 이들이 국란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계속해서 국정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임란 때 왕조가 교체되었어야 마땅했다. 최소한 선조는 쫓겨났어야 했다. 그러나 왕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나아가 극단적 친명 사대주의 세력인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내쫓는 바람에 병자호란의 병란을 다시 불렀다. 주자학 사대주의 지배 집단을 대체할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6·25 전쟁은 인민군의 대거 남침이 직접적 계기지만 그 뿌리는 광복 후 사회주의 계열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세력까지 모두 제거된 후 두 친일 정당인 자유당과 한민당(민주당)이 여야를 이루어 국정을 운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4·19 시민혁명으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으나 친일 세력을 대거 등용하는 반역사적이고 무기력한 국정 운영 끝에 5·16 군사 쿠데타를 맞은 것 또한 그 잘못된 뿌리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6·10 시민항쟁으로 87년 체제가 만들어졌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대통령 직선제 이후, 특히 노무현 대통령 이후 실패한 대통령들이 계속되는 현재의 87년 체제가 역사적 시효를 다했음을 말해 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재발한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의 현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이덕일의 역사의 창]- 역사에 무지한 사회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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