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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 가장 풍성하고 여유로운 날. 가족과 함께 지내며 이웃과 정(情)을 나누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19’는 가족끼리 만나지도 모이지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네 번의 추석과 설을 보내고, 이제 비로소 고향산천을 찾아 그토록 그립던 가족의 얼굴을 부벼 볼 수 있게 됐다. <관련기사 2면>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지만, 다행히 코로나 3년째인 올 추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명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명절의 모습마저도 완전히 달라지게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부모님들은 보고싶은 아들, 딸, 손주들을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잘 지낸다. 할머니, 할아버지 괜찮다.”며 방역지침 이상의 거리두기를 준수했다. 자식, 손주들의 얼굴을 익숙치 않은 휴대폰 화면으로 쳐다보며 애써 서운함을 감췄던 ‘완벽한 거리두기’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맘놓고 만나지도 못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두번의 추석과 설을 보내면서 어느덧 ‘비대면 만남’에 우리는 익숙해지고 있다.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여전히 곁에 머물러 있는 이번 추석,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녀들은 서로 귀성 날짜를 달리해 대면접촉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다음 명절을 기약하는 것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바꿔놓은 획기적인 변화상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명절 풍속일 것이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반드시 만나 모여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보니 명절 때만 되면 연휴기간 철도, 자동차 등을 통해 4000만명이 민족 대이동을 한다. 평소보다 2~3배의 시간이 걸려도, 온 밤을 꼬박 새며 고속도로에 발이 붙잡혀도, 가족을 만나 에너지를 얻어 또 다음의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2년은 그 소중한 명절을 간소하게 치르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족의 얼굴을 화면으로 만나게 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차례상 상차림도 줄었다. 아예 차례상를 차리지 않고, 가족 식사로 대신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또 모이는 것을 자제하고, 접촉을 꺼리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에 대한 관심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마음도 예전만 못하다. 타인과 떨어져 고립된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코로나가 아무리 기승을 부리고, 시대가 급변해도 추석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되레 빠듯한 월급 통장에서 일, 이십만원이라도 더 빼내 후원하는 따뜻한 가슴들이 있다.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개인과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 명절 연휴 기간 평소 시도하지 못했던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간소화와 비대면이 정착됐다고는 하지만 거리두기 해제로 인해 이번 연휴에는 3000만명이 민족 대이동을 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추석 풍경은 이미 많이 변했고, 이 풍경은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행은 아닐 듯 싶다.
비대면 추석이든, 거리두기 추석이든, 추석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은 어느새 훈훈해지고 따뜻해진다. 차례상을 차리든 차리지 않든, 고향을 가든 해외여행을 가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추석이길 바란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지만, 다행히 코로나 3년째인 올 추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명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명절의 모습마저도 완전히 달라지게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부모님들은 보고싶은 아들, 딸, 손주들을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잘 지낸다. 할머니, 할아버지 괜찮다.”며 방역지침 이상의 거리두기를 준수했다. 자식, 손주들의 얼굴을 익숙치 않은 휴대폰 화면으로 쳐다보며 애써 서운함을 감췄던 ‘완벽한 거리두기’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맘놓고 만나지도 못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두번의 추석과 설을 보내면서 어느덧 ‘비대면 만남’에 우리는 익숙해지고 있다.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여전히 곁에 머물러 있는 이번 추석,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녀들은 서로 귀성 날짜를 달리해 대면접촉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다음 명절을 기약하는 것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바꿔놓은 획기적인 변화상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명절 풍속일 것이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반드시 만나 모여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보니 명절 때만 되면 연휴기간 철도, 자동차 등을 통해 4000만명이 민족 대이동을 한다. 평소보다 2~3배의 시간이 걸려도, 온 밤을 꼬박 새며 고속도로에 발이 붙잡혀도, 가족을 만나 에너지를 얻어 또 다음의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2년은 그 소중한 명절을 간소하게 치르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족의 얼굴을 화면으로 만나게 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차례상 상차림도 줄었다. 아예 차례상를 차리지 않고, 가족 식사로 대신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또 모이는 것을 자제하고, 접촉을 꺼리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에 대한 관심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마음도 예전만 못하다. 타인과 떨어져 고립된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코로나가 아무리 기승을 부리고, 시대가 급변해도 추석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되레 빠듯한 월급 통장에서 일, 이십만원이라도 더 빼내 후원하는 따뜻한 가슴들이 있다.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개인과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 명절 연휴 기간 평소 시도하지 못했던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간소화와 비대면이 정착됐다고는 하지만 거리두기 해제로 인해 이번 연휴에는 3000만명이 민족 대이동을 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추석 풍경은 이미 많이 변했고, 이 풍경은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행은 아닐 듯 싶다.
비대면 추석이든, 거리두기 추석이든, 추석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은 어느새 훈훈해지고 따뜻해진다. 차례상을 차리든 차리지 않든, 고향을 가든 해외여행을 가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추석이길 바란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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