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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예향

[살아난다, 골목길] 올망졸망 감성길 쉬엄쉬엄 거닐다

by 광주일보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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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서구 ‘청춘발산마을’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엄마 언제와? 누나 빨리와’ (작가 신호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골목’이다. 골목은 내 유년의 정원이고 들판이며 큰 스케치북이었다.”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골목 인문학’에서 골목길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규모 재개발에 의해 우리 주변에서 골목길이 사라져가고 있다.

반면 살아남은 일부 골목길은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새로운 문화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 여행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광주 발산마을과 양림동, 전남 목포 ‘옥단이길’을 비롯해 나주·순천·여수·광양 등지의 골목길을 걸어봤다.

 

“골목길은 아늑한 휴먼 스케일을 유지하며, 차가 다니지 않아야 하고, 근대사의 주역인 서민들이 사는 공간이며, 일상성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동네다. 또한 능선에 나지막하게 퍼져 있어야 하며, 한국전쟁 이후 독재개발기때 농촌이 붕괴되면서 대도시로 내몰린 사람들의 군집지이고 별의별 불규칙한 공간의 종합 선물세트이며, 귀납적 축적의 산물이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난 2000년 펴낸 ‘서울, 골목길 여행’에서 ‘골목길’을 이렇게 정의하며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라고 말한다.

골목길이 우리 주변에서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오랜 역사를 품은 동네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 탓이다. 가속화되는 도시화는 골목길을 몰아내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수십 층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광주시 동구 학동 ‘팔거리’와 같이 동네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오랜 골목길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도시화와 대규모 개발사업의 광풍을 비껴간 일부 골목길은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예전과 같이 골목길에 자리를 펴고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쇠락해가는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청년세대 발길 이어지는 양림동·사직동 골목길"

 

양림동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버들숲’(楊林)을 상징하는 아름드리 능수버들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나무가 선 자리는 일명 ‘펭귄마을’ 입구이기도 하다. 마을이름은 화재로 흉물스럽게 변한 마을 빈터에 텃밭을 가꾸고 마을을 아름답게 꾸민 김동균 촌장에게서 유래했다. 40여 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김 촌장의 불편한 걸음걸이가 흡사 펭귄 같아 텃밭에 ‘펭귄 텃밭’, 마을명 역시 ‘펭귄마을’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을 문 고기’라는 제목을 붙인 김동균 촌장의 정크아트를 비롯해 다채로운 작품들이 양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유행 따라 살지말고 형편따라 살자’와 같이 벽면마다 적힌 문구가 웃음을 자아낸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새겨진 ‘시시(詩詩)한 골목’은 펭귄 공예거리와 이어진다. 자녀와 함께 ‘펭귄마을’을 찾은 탐방객들은 1960~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며 ‘레트로’ 감성을 만끽하는 듯하다.

현재 ‘근대역사문화마을’ 양림동에서는 ‘제1회 양림골목 비엔날레’(~5월 9일)가 한창이다. ‘마을이 미술관이다’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는 양림동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예술을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아쉽게도 1899년 건축된 ‘이장우 가옥’(광주시 민속문화재 1호)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골목을 거닐다 보면 근대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과 한옥, 작은 미술관,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 마음을 끄는 동네책방, 아기자기한 공방 등을 마주하게 된다.

 

 

양림동에서 양림파출소를 지나 ‘사직동 통기타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에는 광주 음악산업진흥센터를 비롯해 20여개소의 통기타 카페가 들어서 있다. 1980년대에 형성된 이곳은 ‘광주 뮤지션들의 음악적 고향’이었다. 축대위에는 광주 통기타 1세대 고(故) 이장순(1946~2012)과 국소남, 정용주, 박문옥, 한보리, 김원중 등 대표적인 광주 뮤지션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 밖에도 최근 광주 충장로우체국과 청소년 삶디자인센터 사이에 ‘K-POP STAR 골목길’이, 광주극장 옆에 ‘영화가 흐르는 골목’이 새롭게 단장됐다. ‘카페 거리’로 널리 알려진 동구 동명동의 ‘동밖에 골목’에서도 동명동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골목길에는 도시의 역사가, 마을주민들의 삶의 체취가 깊이 배어있다. 결국 골목길은 한 도시에 뜨거운 피를 돌게하는 핏줄이면서 그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얼굴이다. 고층빌딩 속에서도 우리가 간직해야할 따뜻하고, 정감넘치고,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다.


"BTS벽화 찾아오는 광주 ‘청춘발산마을’"

 

‘주민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을 청춘발산마을.’

광주시 서구 양3동 발산마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구이다. 광주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발산마을은 민·관 협력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청춘발산마을’로 재탄생했다. 현대차그룹과 사회적기업 ‘공공프리즘’이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광주시, 서구청,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사랑의 열매와 함께 디자인·문화·ICT(정보통신기술)를 융합한 지속가능한 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마을을 완전히 철거하는 재건축·재개발이 아니라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펼쳐 마을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하고, 청년들이 들어와 식당과 카페 등을 창업하고 공방과 예술 작업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본래 마을이름에 ‘청춘’이 덧붙여진 이유다.

마을 공용주차장에 차를 두고 천천히 걸어본다. 샘몰경로당 동쪽 골목은 ‘발산 명동벽화거리’로 조성돼 있다.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과 발산마을 역사를 연계시켜 재치 있게 웹툰화한 벽화들이다. 골목안쪽에는 발산 주민들이 사용하던 물건과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양3동 역사문화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샘몰경로당에서 남서방향으로 50여m를 걸어가면 ‘108계단’이다. 띄엄띄엄 계단마다 청춘들의 고뇌가 담긴 메시지들이 새겨져 있다.

‘어떤 존재로 빛을 낼지, 아직은 모르겠어. 아니, 어쩜 실패할지도 몰라.’

‘청춘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으로 빛날까.’

계단 끝에 올라서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닿는다. 오른편에는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 ‘뽕뽕브릿지’가 자리하고 있다.

 

계단 왼편에는 이색 대형 벽화가 눈에 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중 한명인 광주출신 제이홉(j-hope)의 생일(2월 18일)을 맞아 중국 팬클럽의 기부로 그려진 벽화이다. 벽화는 너비 12m, 높이 3.5m 규모로, 주택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광주천과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산전망대에는 ‘별집’(작가 박상현·이성웅)과 ‘별따고 꿈따고’(작가 신호윤·박상현·최윤미) 등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구불구불한 마을 골목마다 색다른 벽화들이 장식돼 있다. 마을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청춘발산마을’ 홈페이지(balsanvillage.com)에서 마을지도와 오디오 파일을 다운로드해 둘러보길 권한다. ‘마을산책’ 3개 추천코스가 있으며, ‘주민집밥 투어’와 ‘마을해설사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살아난다, 골목길-전남] 역사·문화 품으며 아릿한 감성 충만

 

◇ 나주 ‘연애고샅’과 ‘징검징검 서부길’ = ‘고샅’은 골목이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연애고샅’은 나주 금성관(보물 2037호) 동쪽편 담장과 민가사이에 나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칭한다. 골목길은 금성관 뒤편 ‘사창(司倉·관곡 저장창고)거리’ 나주추어탕에서 미향나주곰탕까지 남북방향으로 140여m 길이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무척 좁았다. 그래서 남녀가 지나칠 때 스칠 정도여서 연애하기 좋다고 하여 ‘연애고샅’이라 불렀다고 한다.

1935년에 건립된 중앙교와 ‘일제강점기 하수도길’~옛 나주극장~고조현 외과(옛 금남금융조합)~목사내아(琴鶴軒)를 차례로 지나 나주읍성 서문(映錦門)으로 향한다.

나주읍성내 골목길에는 고려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나주의 역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1011년 거란군이 침입하자 현종이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외가인 나주로 몽진(蒙塵)을 왔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건재(健齋) 김천일 의병장이 나주 금성관 망화루앞에서 의병출정식을 가졌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군은 나주성 서문을 공격했으나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퇴각해야했고, 1929년 11월 나주 항일 학생시위대는 옛 금남금융조합 사거리에서 ‘조선 학생만세’를 외쳤다.

◇ 목포 ‘옥단이 길’과 ‘시화마을’ = 목포 목원동 골목길은 ‘옥단이 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옥단이’는 1930~1950년대 목포에서 살았던 실존인물이다. 물을 길어다주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허드렛일을 해주는 날품팔이꾼이었다. 어려서부터 옥단이를 지켜보았던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은 팔순을 맞은 2003년에 희곡 ‘옥단(玉丹)어!’를 집필했다. 구상한지 7년만에야 탈고한 작가는 작품해설에서 “천대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며, 남을 위해 베풀다가 길지 않은 생애를 마친 불행한 여인 옥단은 우리 민족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1930년대 지어진 일본사찰인 옛 동본원사(東本願寺) 목포별원(현 오거리문화센터)에서 첫 걸음을 뗀다. 법정 스님이 청년시절 불교에 귀의하는 계기가 됐던 장소인 ‘정광정혜원’이 지척이다. 노적봉 예술공원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걷다 보면 수화 김환기의 작품으로 랩을 씌운듯한 나지막한 건물과 고흐, 샤갈, 뭉크, 칼로 등의 초상이 그려진 ‘세계 예술벽화’와 마주하기도 한다.

유달 예술타운(옛 달성초등학교) 아랫마을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감성벽화들이 벽면을 꾸미고 있다. 건물 모퉁이에 그려진 꽃을 든 소년 작품과 창문을 가마 창으로 절묘하게 대체한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소설가 박화성의 단편소설 ‘하수도 공사’(1932년 작)의 실제 배경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목포 서산동 ‘시화(詩畵)마을’은 목포항을 내려다보는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이 2015년부터 3년간 인문도시 사업의 하나로 지역 시인과 화가, 주민들과 함께 조성했다.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의 촬영지인 ‘연희네 슈퍼’를 조금 지나면 골목길은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다. 좁디 좁은 첫째 골목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를 품은 보리마당’에 도착한다. 흑백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바보사진관’과 카페 ‘빨강머리앤’, ‘우인 갤러리’ 등 젊은 세대 취향의 문화예술 공간이 몰려있다.

둘째 골목 벽면에는 주민들이 쓴 시가 적혀있다. 시구마다 주민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이 담겨있다.

“외동딸이 너무 이뻐서/ 학교 휴교령 내린다고/ 공부를 못하게 한 우리 아부지/ 땡꽁놀이 하면서 철없이 뛰어 놀았는데/ 벌써 막둥이 할매가 되어 경로당 신세.”(이난금 ‘막둥이 할매’)

 

◇ 문화로 피어나는 순천 ‘700년 골목길’ = 전남도 순천의료원 앞 골목길 도로명은 서문성터길이다. 헐린 성벽 자리는 도로(호남길)로, 메워진 해자는 골목길로 명맥을 잇고 있다.

옛 읍성내 골목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행동 골목길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단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골목이름 조차 ‘장미아파트 골목’, ‘텃밭골목’, ‘서문성곽 골목’, ‘행금목욕탕 뒤안 골목’처럼 정겹다. 골목 담재료는 예스러운 황토를 비롯해 붉은 벽돌, 시멘트 블록 등 다양하다. ‘예술공간 카메라타’와 ‘독립운동가(박순동·문경홍) 생가터’와 불쑥 만나기도 한다.

순천웃장으로 연결되는 ‘감사터길’ 아스팔트 바닥에는 ‘순천부읍성 701’ 동판이 박혀있다. 옛 읍성의 흔적을 알려준다. 150여 년 전 순천의 모습은 순천의료원 인근 문화광장 바닥에 새겨진 ‘1872년 순천부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월 완공된 ‘남문터 광장’과 청렴의 상징인 팔마비(八馬碑·보물 제2122호), 순천향교, 문화의 거리 등이 자리한 순천 원도심은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옛’과 ‘오늘’, ‘내일’을 품고 있다.

◇ 바다를 품은 여수 ‘고소 1004 벽화마을’ = 고소동 벽화는 주민들의 힘으로 지난 2011년 완공됐다. 중앙동 4기 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공동체 형성사업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주민들과 지역단체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성금을 모았다. 해양공원에서 고소동을 가로질러 완성된 벽화 길이는 1004m. 자연스럽게 ‘고소 1004 벽화마을’로 이름 붙여졌다.

해변 이순신광장로에서 벽화골목길로 들어서는 입구는 크게 ▲이순신광장문 ▲낭만포차문 ▲종포문 등 3곳이다. 바닷가 해발 117m의 나지막한 야산에 조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계단은 필수적이다. 골목길을 힘겹게 오르다 걸음을 멈추고 등 뒤로 시선을 돌리면 바다다. 올망졸망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과 여유로운 바다의 풍경은 대조적이면서도 잘 어우러진다.

사람한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천사벽화마을’ 골목길. 그렇지만 풍경만은 일품이다. 주민들 역시 고단하고 팍팍한 삶속에서도 바다를 보며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여수 밤바다’는 그래서 더욱 애틋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선다.

◇ 광양 동외마을 ‘정채봉 문학테마길’ = 올해는 정채봉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세암’과 ‘초승달과 밤배’와 같은 빼어난 작품을 남긴 작가는 “덴마크에 안데르센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정채봉이 있다”(정호승 시인)라는 찬사를 받았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에서 태어난 작가는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광양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건립돼 광양의 행정중심 역할을 해온 옛 광양군청사 건물은 현재 광양문화원으로 쓰이고 있다. 청사 동쪽 널찍한 골목이 ‘정채봉 문학테마길’이다.

골목길에는 광양시 문화도시사업단 주도로 ‘오세암’ 주인공인 다섯 살 소년 ‘길손이’와 누이 ‘감이’ 조형물을 비롯해 ‘우리읍내’(작가 김미경), ‘눈꽃’(작가 류종원)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2층 건물인 동외리사무소 북쪽 벽면은 ‘정채봉과 아름다운 사람들’ 벽화로 가득하다. 지난해 1월 완성된 벽화에는 작가의 초상과 함께 어린왕자, 초승달, 별, 채송화, 세 명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3명의 인물은 설명문에 따르면 작가에게 큰 도움을 준 광양사람들이다. ‘도장방 아저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작가에게 나무도장을 파주었고, ‘이균영 교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의 꿈을 함께 키운 친구였고, ‘우체부 정샌 아저씨’는 중학 진학을 포기하고 신문배달을 할 때 작가에게 용기를 북돋워준 분이라고 한다.

골목길 인근에는 ‘빈터’가 마련돼 있다. 작가의 작품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9~오후 6시.(광양읍 읍성2길 6-17·061-761-0701)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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