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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文香이 흐르는 문학관을 찾아서] 담양 가사문학관

by 광주일보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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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맑은 고장이 잉태한 한국가사문학의 산실"

 

지난 2000년 문을 연 담양 가사문학관에는 송순, 정철을 비롯한 담양이 배출한 뛰어난 문인들의 다양한 가사 작품과 자료 등이 비치돼 있다.

담양은 어디를 가도 대나무천지다. 대숲에 실려 오는 영산강 물소리는 지친 마음을 다독인다. 대나무의 직립은 무언의 가르침을 준다.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와 생을 바라보는 유연함이 그것이다. 대부분 의지가 강한 사람은 유연함이 미흡하고, 유함이 지나친 이는 근기가 없어 세태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향골 대나무를 보노라면 의기와 유연함은 서로 상통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광주에서 담양까지는, 넉넉잡고 30여분이면 당도한다. 설 연휴 뒹굴뒹굴하며 집에만 갇혀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서둘러 가벼운 차림을 하고는 담양으로 나선다. 담양은 언제 가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고장이다. 강물이 흘러가듯,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이듯, 차창에 풍경이 스치듯 느긋한 마음으로 간다. 두 눈에 담아두고 싶은 풍경들을 하나하나 눈맞춤하면서 말이다.

담양은 ‘녹창’(綠倉)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푸르름이 가득한 창고요, 녹음을 축적한 저장고다. 입춘이 지나고 설이 지난 담양에는 푸른빛이 완연하다. 영산강을 따라 어깨를 마주한 인근 연봉들도 푸르다.

 

담양 가사문학관. 담양을 설명하는 또 다른 대명사다. 대나무의 고장, 생태의 고장을 아우르는, 또 다른 명징한 실체가 바로 ‘가사’(歌辭)다. 고려 말 태동해 조선 초기 사대부를 거쳐 문학의 장르로 자리 잡은 율문이 바로 가사다. 7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서사와 교술 양식을 계승해온 우리의 전통 시가 유산이다. 4음4보라는 율격은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 있는 형식의 장점을 지녔다.

가사문학관을 향해 가는 길, 익숙한 가사의 구절이 귓가에 흐른다. ‘면앙정가’. 고교시절 대학입시를 위해 배웠던 가사의 구절이 생각난다. 고어가 많아 익숙지 않았지만, 음보를 타고 졸졸졸 풀려나오던 노래는 여전히 새롭다. 옛 선비가 바라본 담양 들녘과 무등의 품이 주는 정취를 오롯이 내 것인 양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선인들이 부리는 언어의 기교는 경탄 그 자체였다. 한마디로 그것은 ‘흐름’이었다.

자연스러움은 순리를 따르는 데 있다. 고민의 흔적이 없는 내면에서 움터 바로 흘러넘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요, 문장이다.

무등산 한 자락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구나

끝없이 넓은 벌판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곱 굽이가 움츠려 무더기로 벌여 놓은 듯하고

제월봉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 같아

선잠에서 깨어 머리를 얹어 놓은 것 같으니

넓은 바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혔구나 …

<‘면앙정가’ 중에서>

‘면앙정가’를 읊조리는데 어디선가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가사문학관에 가는 것을 숲의 새들도 알았을까.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이 정겹다. 구슬프지 않아서 좋다. 음보를 갖추고 우는지 절로 노래로 다가온다. 자연의 모든 소리는 노래려니 싶다. 한동안 차창 너머의 숲으로 눈길을 준다.

문학관 한켠에 있는 명창 박동실기념비

 

그렇게 담양 창평면을 넘어 남면으로 아니 ‘가사문학면’으로 들어선다. 지난 2019년 2월, ‘남면’의 행정지명이 그렇게 바뀌었다. 송순의 ‘면암정가’와 정철의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의 산실에 맞는 명칭으로 바꾸자는 여론에 따른 것이었다. 낮은 구릉성산지를 둘러싼 근동이 가사문학의 터전이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정원에 있는 고풍스러운 정자

가사문학관은 지난 2000년 10월 개관했다. 가사문학의 보전과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한 취지를 받들었다. 안에 들어서자 다양한 전시 작품이 길손을 맞는다. 송순과 정철의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사가 포괄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의 작품도 곳곳에 비치돼 있어 가사문학의 진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지난 2002년부터는 영남의 규방가사도 수집했으며 기행가사, 유배가사 등의 원본과 필사본도 모았다고 한다.

잠시 잠깐, 조선시대로 회귀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중기의 어느 날에 불시착해 있는 것 같다. 고풍의 기와와 마당에 부려진 멋스러운 정원, 옛것들로 이루어진 소품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왜 담양이 가사문학의 산실일까. 대가들의 작품이 이곳에서 태동했기 때문이다. 언급한 대로 송순의 면앙정가와 정철의 성산별곡, 사미인속, 속미인곡 등이 담양에서 창작됐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송순의 자료다. 1841년 헌종이 송순에게 내린 ‘사령장’과 ‘시호장’을 비롯해 송순이 80세 되던 해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한 기록 ‘분재기’ 등의 자료가 눈에 띈다.

송강 정철의 문집

송강 정철의 자료도 볼 수 있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의 자료는 그의 삶이 겹쳐져 다소 불편한 느낌마저 환기한다. 정여립의 모반 사건으로 반대파를 축출하는데 앞장섰던 그는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러나,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탁월한 시적 역량이다. 그는 천상 시인이었다. 정치가 이전에, 문장을 음미했던 시인이었던 것이다. 시어나 정경의 묘사가 탁월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지경이다.

문학관에는 눌재 박상의 문집과 석천 임억령의 친필유묵 그리고 소쇄처사 양산보의 글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을 비롯해 서하당 김성원의 유고 등도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이 담양 성산계곡에서 더위를 씻는 모습을 그린 ‘성산계류탁열도’는 무릉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안겨준다.

이밖에 허난설헌의 규원가를 비롯해 부녀자들이 규방에서 창작했던 다양한 규방가사 등도 보인다.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는 훈계의 내용 등은 지금의 관점으로는 다소 생소하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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