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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100년 전 고려인들, 독립 염원 ‘삼월일일’ 창간하다

by 광주일보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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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문화관,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 기획전…2024년 2월까지
1923년 블라디보스크서 3·1정신 계승 발행…‘한글문학’ 꽃피워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내년 2월 28일까지 광산구 월곡 고려인문화관에서 열린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3년 3월 1일 3·1운동 제4주년을 기념해 블라디보스크에서 ‘삼월일일’이라는 신문이 발간됐다. 1919년 민족독립을 기치로 온 겨레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던 기미년 3·1운동이 일어난 지 만 4년이 되던 날이었다.

3·1운동을 계승한 이 신문의 제호는 ‘삼월일일’이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민족의 독립을 학수고대하던 고려인들은 그렇게 신문 창간을 토대로 독립운동의 횃불을 다시금 높이 들었다.

당시 창간호는 ‘삼일운동략사’와 ‘독립선언서’를 게재해 거족적인 3·1운동의 전개과정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삼일운동략사’에 실린 글이다. “원수의 강제합병을 당한 후로 한국민중의 광복운동은 잃즉 쉴 날이 없엇다. 일본군별재별의 횡포와 략탈은 갈수록 몹쓸엇다. ”

이밖에 한 지사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에 나섰다가 일본 경찰의 칼에 팔이 잘리자 다른 손으로 만세를 외쳤던 한 여학생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창간호 ‘삼월일일’

‘삼월일일’은 제호에 걸맞게 매년 3월 1일이면 3·1운동 관련 기사와 논설을 게재했다. 이후 신문은 제4호부터 ‘선봉’으로 제호가 바뀌었으며 1938년 ‘레닌기치’, 1991년 ‘고려일보’로 변경됐다.

‘고려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어 눈길을 끈다.

3·1절 104주년을 맞아 개최되고 있는 이번 기획전은 내년 2월 28일까지 1년간 진행된다. 전시장에는 고려일보 1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25년 동안 고려일보 기자로 활동한 바 있는 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관장이 수집한 자료들이다.

김 관장은 지난 1991년 광주일보가 카자흐스탄에 세운 ‘우스토베 광주한글학교’에서 교사로 동포들의 후손들을 가르쳤다. 귀국 후 그는 옛 소련에 의해 연해주에서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으로 강제이주(1930~1937년) 됐던 고려인 역사가 담긴 기록물 1만2000점을 수집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당시 신문 자료를 비롯해 신문사 직원들, 기록 사진, 당시 기사, 활자본 등이 전시돼 있다.

연대별로 전시된 자료들은 고려일보의 역사를 넘어 우리의 글과 모국어를 지켜나가기 위한 눈물겨운 흔적으로 다가온다.

고려일보는 당시 시대와 맞물려 몇 차례의 변화와 곡절을 겪는다. 1923년부터 1937년까지는 계몽의 횃불을 들었던 시기다. 당시 ‘선봉’이라는 제호로 발행된 신문은 대중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 사회 이상을 설파하고 주민들을 계몽해나갔다. 또한 동포작가들의 한글 작품을 널리 소개했으며 우리말의 올바른 표기법이 확립될 수 있도록 어문학자들을 후원했다.

그러나 ‘선봉’은 1937년 9월 12일 1644호를 끝으로 폐간된다. 신문사 간부들도 모두 체포돼 숙청됐다. 특히 농업부장 한동훈만 살아남아 강제 이주 열차를 탔지만, 그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폐간된 신문을 복간하려 노력하다 체포돼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러나 독립의 열의만큼 그것을 지면에 담아내기 위한 신문에 대한 집착 또한 버릴 수 없었다. 뜻있는 언론인들의 헌신으로 1938년 5월 15일 카자흐스탄에서 ‘선봉’을 기반으로 ‘레닌기치’가 창간되기에 이른다. 타블로이드판 4면의 신문이었지만, 고려인들은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모국어 신문을 위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고려인들은 소련연방에서 가치있게 살아가기 위해 투쟁을 전개했으며 그 가운데 출판 관련 일은 중요한 임무였다. 1954년 1월 1일부터는 발행부수 7000부, 주 5회를 발행했으며 지면 확대와 함께 ‘문예페이지’란이 활성화되면서 한글문학이 점차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까지 신문에는 기존의 1세대 작가들과 신예 작가들의 참여로 다양한 작품이 실렸다. 1958~1990년에 출간된 한글문학 단행본만 15권에 이른다.

신문은 1991년 새해 벽두부터 ‘고려일보’로 제호가 바뀌고 더 이상 당국의 기관지가 아닌 자유신문임을 선언했다. 국가 지원금을 거절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정신으로 바른 신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그해 말 소련 붕괴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수차례 폐간 위기를 겪었지만 신문사는 남은 기자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2000년대를 맞게 된다.

그처럼 고려일보는 한 세기를 고려인과 동고동락하며 한 세기를 이어왔다. 소비에트화와 러시아화라는 모진 풍파에서도 모국어를 지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김병학 관장은 “모국어와 한글문학으로 민족얼을 계승하려는 고려인 선각자들의 의지는 모국어 활자에 100년의 수명을 불어넣었다”며“다행히 지난 30여 년 간 여러 후배 언론인과 기자들이 나타나 선배 세대의 뜻을 시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가고 있어 고려인 언론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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