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57

젊은이와 친구가 되는 방법-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2년 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되었다. 2년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나온 날이 열 번 남짓밖에 안 된다. 꽃 피는 춘삼월에 입학식을 하고 학과별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축제를 하는 등, 사람들이 통과의례를 치르듯 대학에서 행하는 모든 과정이 통으로 생략된 채 졸업을 하게 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2년 동안 학생들을 기다려 온 나는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학생들도 마스크를 쓰고 중무장을 하여 얼굴을 모두 가렸으나 학교에 왔다는 기쁜 표정은 가려지지 않는다. 친구 사귈 틈도 없었을 것이므로 출석을 부르면서 우리 반에 이런 친구가 있다고 소개해 주었더니 서로 박수로 환영한다.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도 금세 화기애애하게 바뀌는 순간이다. 강의를 먼저 해야 할까 반갑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 할.. 2021. 11. 21.
그 많던 한량은 다 어디로 갔을까-장석주 시인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광산 김씨 외가에 홀로 의탁되어 자랐다. 광산 김씨 문중 큰 제사마다 검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참석하던 할아버지뻘 친척 중 ‘삼례 양반’이 기억에 남는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웃고, 막걸리를 좋아하던 이였다. “그 어른 참 한량이었지.” 그이를 한량이라고 지목하는 말에 비난의 뜻은 없었다. 정약용은 공무에서 물러 나와, 건(巾)을 젖혀 쓰고 울타리를 따라 걷고, 달 아래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산림과 과수원·채소밭의 고요한 정취에 취해 수레바퀴의 소음을 잊었다고 했다. 뜻 맞는 벗들과 ‘죽란사’(竹欄社)라는 시모임을 만들어 날마다 모여 시를 돌려 읽고 취하도록 마신 정약용 같은 선비가 한량의 원조였을 테다. 돈 잘 쓰고 풍류를 즐기는 향촌의 유력 계층 젊은이들은 가계.. 2021. 10. 31.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중국집에도 지역성이 있다 몇 해 전이던가, 코로나도 들기 전의 시절이다. 광주에 볼일이 있어서 송정역에 내렸는데, 지하철에 김밥 프랜차이즈 광고가 크게 붙어 있었다. 이 도시를 찾는 외지 사람들이 대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호남에 가면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의 절반쯤이 늘 가득 차곤 한다. 점심과 저녁은 어디서 맛있게 먹을까, 혼자 가서도 상을 받을 수 있을까 같은 기대감에 부푼다. 더러는 비판적 생각도 한다. 호남이라고 어디서 재료를 거저 가져오진 않을 텐데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은 건 아닐까, 저렇게 해서도 남을까. 어찌 됐거나 음식에 대한 상념이 치솟는 곳이 호남이다. 내게는 특히. 그런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김밥 프랜차이즈 광고가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복잡해졌던 것이다. 하기야 김밥 같은 ‘패스트푸드’는 프랜차이.. 2021. 10. 24.
[고규홍의 나무생각] 나무의 생존 전략에 담긴 단풍과 낙엽의 비밀 가을비 내리고 시나브로 나무에 가을빛이 뚜렷이 올라온다. 노란색에서 빨간색이나 갈색에 이르기까지 나무마다 제가끔 서로 다른 빛깔로 달라질 태세다. 단풍이다. 단풍의 ‘단’(丹)은 붉은 색을 뜻하는 글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 잎도, 갈색으로 물든 도토리나무 잎도 모두 ‘단풍 들었다’고 말한다. 원래 글자 뜻과 달리 단풍은 가을에 바뀌는 모든 빛깔을 말한다. 나무에게 단풍은 겨울 채비의 첫 순서다. 단풍이 드는 것은 나무의 모든 생애에서 가장 치열한 생존 활동이다. 에멜무지로(대충) 가을을 보낸다면 엄동의 북풍한설을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긴 휴식을 위해서 나무가 준비해야 할 일은 하고하다. 바람에 가을 기미가 느껴질 즈음부터 나무는 잎과 가지를 잇는 물의.. 2021. 10. 4.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