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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신속’ 뒤에 가려진 감정 노동 이상의 노동현장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무섭다. 비용을 지불한 능력이 있다면 일순간 권력의 불평등이 허용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과도한 해석일까. 혹은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중략) 중요한 것은 이런 불평등이 가능한 시대라는 점이다. 콜센터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여성 상담사에게 과도한 친절과 미소가 당연한 듯 강요된다. 특정한 감정을 특정 대상에게만 과도하게 강요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비용을 치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일까?”(본문 중에서)
일반인에게 콜센터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친절, 미소, 정확, 신속과 같은 말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감정, 노동, 갑질 같은 단어도 떠올릴 수 있다.
과거 구로공단의 ‘공순이’는 오늘날 어떻게 ‘콜순이’가 되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며 콜센터를 모티브로 그곳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이가 있다.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관욱 박사다. 김 교수가 발간한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담아낸다.
저자가 콜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10년 간 현지연구와 심층인터뷰, 이론적 연구를 병행했다.
콜센터의 콜은 언제나 밀린다. 연결이 되면 ‘친절, 정확, 신속’을 외치며 ‘미소 띤 음성’으로 상담사는 콜을 받는다. 수시로 밀려드는 전화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저자는 여성 노동 및 인권의 현주소를 50여 년 전 구로공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콜센터 여성 상담사의 삶이 오래 전 여공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서울 지역 첫 집단감염 사례에 언론과 시민들이 주목했다. 콜센터의 노동 환경이 부각됐고 근본적인 문제가 상담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하청 구조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저자는 콜센터 상담사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처우를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특히 저자는 콜센터 논의가 악성 고객의 갑질 논란과 상담사의 감정노동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콜센터 산업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콜센터가 상담사들 사이에서 ‘흡연 천국’으로 불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악성 고객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상담사들은 흡연실을 도피처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콜센터 흡연실에 대해 어떤 상담사는 “한숨들의 무덤”이며 “여기서 흡연이냐 아니면 뛰어내리느냐”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라고 극단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일회용 배터리’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악성 고객은 물론 실적을 관리하는 회사, 상담사를 하대하는 원청업체 직원, 잠재적 경쟁자인 동료들과의 갈등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유발한다. 실제로 다른 직군 서비스업 종사자에 비해 콜센터 상담사는 거의 모든 질병에서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친절과 정확 그리고 신속 뒤에 가려진 감정 그 이상의 노동현장이 불러온 양상이다. 저자는 감정노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담노동을 ‘정동노동’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단순히 감정을 조절해야 할 뿐 아니라 모욕적이고 부당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정동’에 길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이면에는 여성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이 드리워져 있다.
콜센터는 모든 산업 분야에 존재하지만 수화기 너머 상담사는 그렇게 지워지기 일쑤다. 매일 수 백번씩 ‘안녕’하느냐는 인사를 건네는 상담사들이 정작 스스로의 안녕을 돌아보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창비·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일반인에게 콜센터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친절, 미소, 정확, 신속과 같은 말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감정, 노동, 갑질 같은 단어도 떠올릴 수 있다.
과거 구로공단의 ‘공순이’는 오늘날 어떻게 ‘콜순이’가 되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며 콜센터를 모티브로 그곳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이가 있다.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관욱 박사다. 김 교수가 발간한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담아낸다.
저자가 콜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10년 간 현지연구와 심층인터뷰, 이론적 연구를 병행했다.
콜센터의 콜은 언제나 밀린다. 연결이 되면 ‘친절, 정확, 신속’을 외치며 ‘미소 띤 음성’으로 상담사는 콜을 받는다. 수시로 밀려드는 전화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저자는 여성 노동 및 인권의 현주소를 50여 년 전 구로공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콜센터 여성 상담사의 삶이 오래 전 여공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서울 지역 첫 집단감염 사례에 언론과 시민들이 주목했다. 콜센터의 노동 환경이 부각됐고 근본적인 문제가 상담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하청 구조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저자는 콜센터 상담사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처우를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특히 저자는 콜센터 논의가 악성 고객의 갑질 논란과 상담사의 감정노동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콜센터 산업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콜센터가 상담사들 사이에서 ‘흡연 천국’으로 불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악성 고객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상담사들은 흡연실을 도피처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콜센터 흡연실에 대해 어떤 상담사는 “한숨들의 무덤”이며 “여기서 흡연이냐 아니면 뛰어내리느냐”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라고 극단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일회용 배터리’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악성 고객은 물론 실적을 관리하는 회사, 상담사를 하대하는 원청업체 직원, 잠재적 경쟁자인 동료들과의 갈등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유발한다. 실제로 다른 직군 서비스업 종사자에 비해 콜센터 상담사는 거의 모든 질병에서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친절과 정확 그리고 신속 뒤에 가려진 감정 그 이상의 노동현장이 불러온 양상이다. 저자는 감정노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담노동을 ‘정동노동’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단순히 감정을 조절해야 할 뿐 아니라 모욕적이고 부당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정동’에 길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이면에는 여성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이 드리워져 있다.
콜센터는 모든 산업 분야에 존재하지만 수화기 너머 상담사는 그렇게 지워지기 일쑤다. 매일 수 백번씩 ‘안녕’하느냐는 인사를 건네는 상담사들이 정작 스스로의 안녕을 돌아보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창비·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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