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일테면 ‘아는 만큼 안 보인다’도 있을 수 있겠다. 잘 안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체를 외면하거나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오감이나 지식은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호서대에서 강의를 하는 김찬곤 박사는 ‘아는 만큼 안 보인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의 빗살무늬 토기를 예로 든다. 기하학적 추상무늬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신석기인들이 왜 추상미술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문한다.
김 박사가 펴낸 책 ‘빗살무늬토기의 비밀’은 도발적인 책이다. 기존에 알려진 상식을 뒤엎고 새로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자는 한국미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토기를 전면에 내세워 미술사를 횡단한다.
우리의 빗살무늬토기는 1916년 평남 용강 용반리유적에서 처음 출토됐다. 올해로 106년째지만 “세계 학계도 우리 학계도 막연히 ‘기하학적 추상무늬’라고만 할 뿐”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의 신석기미술은 ‘구상미술’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의 실마리를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서울 강동구)에서 찾았다. 물론 세계 기록을 살피고 세계 신석기 기록도 알뜰히 살폈다. 일반적인 세계 신석기인은 그릇에 구름과 비 패턴을 새겼다. 이에 반해 한반도 신석기인은 구름의 ‘기원’까지 담아냈다.
저자는 암사동 신석기인은 파란 하늘을 경계로 그 위에 구름의 기원 ‘하늘 속 물’을 두었으며 그 물은 천문을 통해 구름으로 내려온다고 설명한다. 다시 이 구름을 토대로 “비가 내리고 세상 만물을 깨우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세계 신석기인과 암사동 신석기인의 차이는 신의 존재 여부다. 전자는 구름을 만들고 주관하는 신을 상정하지만 후자는 하늘 속 물이 스스로 구멍(통로)을 통해 구름으로 내려온다고 상정한다.
저자는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를 모두 다섯 가지로 본다. 하늘 속 물(水)과 천문(天門), 경계(파란 하늘), 반원(타원)형·삼각형 구름, 빗줄기, 귀허로 흘러가는 비(雨)가 그것이다.
“암사동 신석기 장인은 구름을 삼각형과 반원(타원)형으로 새겼는데, 반원형보다는 삼각형 구름이 더 많다…. 그릇 전체 모양은 둥근 형태인데 그 둥근 도상 속에 다시 곡선 구름을 새기는 것보다는 각진 삼각형 구름을 새기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아울러 저자는 터키 괴베클리 테페의 핸드백(stone bag) 분석을 통해 서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신석기 세계관의 차이를 주목한다. 한반도 신석기 미술에서 종교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원의 기원’까지 담고 있는 세계관에는 “신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저자의 상상력과 호기심, 연구 열정은 구석기 자연주의 전통이 살아 있는 제주 고산리 덧띠무늬토기에까지 이른다. 이 그릇의 공식 명칭은 ‘고산리 융기문토기’다. 그러나 저자는 저절로 올라온 무늬(융기)가 아니라 일부러 흙띠(덧띠)를 붙여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가장 위의 가닥은 하늘(天), 아래 두 가닥은 구름(雲)으로 본다.
이밖에 저자의 시선은 한반도를 벗어나 그리스 기하학시대 미술에까지 확대된다. 세계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관련한 개념을 살펴보며 곰브리치, 잰슨, 하우저의 신석기 미술 논지도 소개하며 논리적 모순도 정리한다. 책에는 빗살무늬토기를 모티브로 종횡무진 경계를 뛰어넘는 관점과 활달한 상상력과 치열한 연구 열정이 곳곳에 녹아 있다. <뒤란·3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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