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일루즈 외 지음, 이세진 옮김]
지난 2006년 개봉한 ‘행복을 찾아서’는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3억 700만 달러를 넘는 수입을 올릴 만큼 박스오피스를 강타했다. 원작의 저자 크리스토퍼 가드너는 부유한 사업가가 된데다, 예약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인기 강연자로 부상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전형적인 서민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크리스 가드너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 온갖 시련을 겪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미국의 유명한 증권사 앞을 지나다 언젠가는 그곳의 주식중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집세를 못내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면서도 증권사 입사를 꿈꾼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과 긍정적 마인드 덕분에 그는 인턴 입사 후, 마침내 우수 사원에 뽑혀 정규직이 된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가 인기를 끈 것은 행복 자체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행복에 도달한 전형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실존 인물 가드너의 성공은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은 선택하기 나름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연 그럴까? 성공이 선택의 문제로만 국한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가 있다. 과도한 긍정이 강제하는 행복에는 심각한 한계와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사회학과 에바 일루즈 교수와 베를린 막스 플안크 연구소 에드가르 카바나스 박사는 행복을 전파하는 무조건적 행복론자들에게 비판적 거리를 둔다.
두 저자가 펴낸 ‘해피 크라시’는 행복학과 행복 산업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책 제목 ‘해피 크라시’는 ‘행복’을 의미하는 ‘해피’와 ‘정치체제’를 뜻하는 ‘크라시’가 결합된 신조어다. 저자들은 “‘좋은 삶’을 특정 요소로 환원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행복학은 근거 없는 전제, 이론상의 부정합성, 미흡하기 짝이 없는 방법론, 입증되지 않은 결과, 자민족 중심주의적이고 기만적인 일반화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다.”
사실 행복산업, 행복학의 공통의 화두는 최고의 선이 바로 행복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행복학이 과학적 타당성이 있는지, 나아가 개념이 객관적인지 반문한다. 한마디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행복을 위해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흡사 ‘열정페이’와 같은 강요된 이데올로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다.
또한 저자들은 행복의 관념에 대한 사회적 성찰도 거론한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따지지 않고 개인의 심리적 결함으로만 치부하는 데 대한 의문이다. 공식화된 행복에 대한 강박은 “신자유주의 문화혁명이 강요하는 가치관의 노예로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과 같다는 것이다.
행복학의 토대가 되는 내용들은 개인의 결함이나 미흡한 상황을 마치 질병 취급하듯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목표로 제시되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애쓴다. 자기 개선에 몰입하는 ‘행복염려증 환자’와 자아에 초점을 맞추는 ‘행복 연구자’가 등장하게 된 연유다.
저자들은 “행복은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한 강박을 정상으로 여기게 하려는 시장에서 완벽한 상품이 된다”며 “웰빙 전문가를 자처하는 연구자들과 임상가들이 제안하는 다양한 치료, 상품, 서비스에 희망을 걸었던 이들은 이 강박에 역습을 당한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행복은 수많은 돈이 오가는 상품이 된지 오래다. 시장에서 개인의 발전과 ‘역량 증진’을 평가하는 기준이자 상품인 것이다. 정서적 상품, 일테면 즐거움과 평온 등을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행복 추구를 라이프스타일이나 존재의 행동과 사고방식으로 정착시킨다.
행복에 대해 기존에 가졌던 선입관을 재검검해야 할 때다. 행복학 헤게모니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저자들은 말한다. “삶을 혁신하는 도덕적 목표로 남아야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정의와 앎”이라고. <청미·1만6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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