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지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승자의 관점으로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적확한 시선일까? 여기 한 사례가 있다. 신화 속 하나의 이야기다.
어느 날 제우스와 헤라가 재미있는 논쟁을 했다. 사랑하는 남녀는 누가 더 행복한가 라는 토론이었다. 제우스는 여자가 더 행복하다고 했고, 헤라는 남자 쪽이라고 했다. 결론이 나지 않자, 남자로도 여자로도 살았던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얘기를 듣기로 한다.
평범한 남자였던 테이레시아스는 산길을 가다 뱀 두 마리가 엉켜 있는 모습을 보고 작대기로 떼어놓았다. 뱀들은 신통력을 발휘해 그를 여자로 둔갑시켰다. 테이레시아스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수년을 살았다. 그러다 다시 산길을 가다 또 뱀 두 마리가 붙어 있는 장면을 보고 떼어놓았다. 그러자 뱀은 그를 이번에는 남자로 변모시킨다.
제우스는 테이레시아스에게 각기 남녀로 살아보니 어느 편이 행복했는지 물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여자로 사는 것이 아홉 배나 행복했노다고 답했다. 논쟁에서 진 헤라는 테이레시아스 눈을 멀게했고, 이를 불쌍히 여긴 제우스는 그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었다.
이러한 연유로 테이레시아스는 지혜의 존재가 된다. 그는 남자의 세계, 여자의 세계를 넘어 신과 인간의 세계를 넘나들며 삶을 해석한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역사는 한쪽 만을 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테이레시아스처럼 역사는 인간의 내밀한 심층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프리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질문하는 역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역사와 문학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20년 전 나왔던 책을 다시 출간하면서 수정한 결과물이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역사의 발언’에는 ‘독재 정치와 역사’,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유행과 사치 그리고 역사의 동력’, ‘일본, 서구의 그림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역사적 사건과 오늘의 단면을 엮어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조명했다.
그 가운데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은 흥미롭다. 서구 팽창주의에 앞서 중국인들은 1405년부터 1433년 사이에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갔다. 명나라의 환관 정화가 이끄는 대함대의 항로였다. 당시 중국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해 중화세계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인도양을 순항하고 내린 결론은 “해외의 오랑캐들은 중화에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제국주의 없는 제국’, 다시 말해 ‘자기 내부로 갇혀버린 제국’이 된 연유다.
2부 ‘문학 속의 역사’에서는 ‘지옥으로의 여행’(단테의 ‘신곡’), ‘악마의 책’(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근대의 악몽’(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을 통해 역사와 문학의 공통 지점을 주목한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 특히 ‘지옥’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옥여행은 영혼의 어둠을 헤치고 정신적 소생을 도모하는 여행이라고. “우리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세상의 악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악과 맞대면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옥으로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산처럼·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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