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병호기자

5·18 발포는 자위권? … 軍 주장은 거짓이었다

by 광주일보 2022. 6. 23.
728x90
반응형

[광주일보, 1980년 5월 금남로 현장 사진+필름 3600여장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공]
도청 앞 집단발포 2~3시간 전 기관총 실탄장착 사진 공개
광주일보, 지난 42년 간 5·18 단체 등에 사진 기증
진상조사위에 마지막 제공 … 5월 진상규명 소중한 자료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 40분께 광주일보 옛 사옥인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들이 시민군과 대치하고 있다. 계엄군들의 장갑차(M113)위에는 실탄(12.7㎜)이 장착된 캘리버50 기관총이 거치돼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시민군 위협에 따른 자위권 차원의 발포였다’는 전두환 계엄군 일당의 주장을 깨뜨리는 증거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해 전두환 등 신군부 핵심은 줄곧 “5월 21일 오전에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며 학살 책임을 피하려 했는데, 이보다 2~3시간 앞서 금남로에 출동한 계엄군 장갑차에 탑재된 기관총에 이미 실탄이 장착된 모습을 포착한 광주일보 사진이 42년만에 발굴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 사진에 대해 “전두환 계엄군의 자위권 주장 논리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확실한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2일 광주일보사가 1980년 5월 취재해 보관하고 있던 사진과 필름 3600여장을 제공받아 분석한 결과와 주요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5·18진상조사위는 광주일보로부터 제공받은 사진을 2주가량 분석한 뒤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에서 촬영된 사진에 주목했다. 당시 광주관광호텔 앞 금남로에 출동한 계엄군 장갑차와 군인들을 광주일보 옛 사옥인 전일빌딩에서 잡아낸 사진이다.

해당 사진에는 장갑차(M113) 2대가 보이고 소총 등으로 무장한 100여명의 군인이 등장한다. 사진 가운데 위치한 장갑차를 확대하면 12.7㎜ 기관총에 실탄들이 주렁주렁 장착된 모습이 확인된다.

5·18진상조사위는 이 사진에 대해 “장소는 광주 금남로이고, 촬영 시점은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 44분이 유력하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놨다. 광주일보가 제공한 다른 사진과 앞서 타 언론과 5·18기념재단이 제공한 당시 금남로 사진 등을 놓고 면밀히 분석한 결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자행되기 2시간여 전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촬영 시간을 특정하게 된 근거에 대해서는 “사진에 찍힌 전신주의 그림자 각도와 길이, 당시 천문기록 등을 비교해 본 결과 오전 10시44분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사진 촬영 장소는 당시 광주일보(옛 전남일보) 사옥이었던 전일빌딩 고층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5·18진상조사위는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계엄군은 1980년 5월 21일 오전까지는 계엄군에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고, 시민들의 공격이 거세지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군인들이 31사단 병력으로부터 경계용 실탄을 넘겨받아 겨우 발포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펴왔다”며 “광주일보 제공 사진을 분석한 결과 계엄군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했다.

5·18진상조사위는 아울러 “집단 발포 수 시간 전인 오전 10시 15분께 실탄이 분배됐다고 진상을 고백한 하위급 장교와 사병 등 계엄군 증언들은 수차례 나왔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확인했다.

12.7㎜ 크기의 실탄.

5·18진상조사위 출범 이후 5·18기념재단이 제공한 사진에서는 1980년 5월 21일 오전 10~11시께 금남로로 이동하는 계엄군 장갑차에 기관총용 탄통이 실려있던 것이 확인됐으나, 도청 앞 집단 발포 이전에 실탄이 기관총에 장착된 사진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5·18진상조사위 측은 설명했다.

5·18진상조사위는 사진 분석과 별개로 광주 진압에 투입됐던 공수부대 장병들에 대한 대면조사를 통해 장갑차의 12.7㎜ 기관총으로 시민을 향한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도 밝혔다.

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소속이었던 김모 하사는 5·18진상조사위에 “캘리버 50(기관총 일종)인지, (하여간 그거) 걸어 놓고 실탄을 걸어 놓았다”고 진술했다. 또 같은 대대 김모 일병은 “APC(장갑차 일종)에서도 (캘리버)50을 쐈다. 훈련 받을 때 50 쏘는 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는데 시내에서 쏘니까 소리가 울리니까, 빌딩으로도 쏴가지고 (소리가 컸다)”라고 증언했다.

5·18진상조사위는 과거 기록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기관총 발포 사실이 명백하다며, 1995년 검찰 조사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 김모 장군의 진술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김 장군은 “5월 21일 오후 시위대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소대장이 장갑차의 해치를 열고 기관총 사격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위대가 장갑차로 덤벼들자 놀란 소대장이 엉겁결에 손잡이를 잡아당겨 수 발이 발사됐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송선태 5·18진상조사위원장은 “5·18당시 희생자 주검중에 일반적인 총상이라고는 볼 수 없이 훼손된 시신들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당시 검시서를 비교해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광주일보

광주광역시, 전남·전북 지역 신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분야별 호남권 소식 수록

kwangju.co.kr

 

 

[광주일보 촬영 5·18 당시 금남로 현장] 트럭에 싣고 어디갔지…행불자·암매장 전수조사 나서야

22일 광주일보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와 함께 공개한 두 장의 사진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와 암매장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집

kwangju.co.kr

 

 

728x90
반응형